북한이 억류했다고 밝힌 4명 누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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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한이 26일 불법 입국을 이유로 억류했다고 밝힌 우리 국민 4명의 신원과 입북 경위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들이 북한에 불법적으로 들어갔는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26일 현재 북한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은 모두 1054명으로 개성공단에 983명, 금강산에 46명, 평양에 8명, 해주에 17명이 있다”며 “확인 결과 26일 오후 4시 현재까지 신변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평양에는 대북지원 민간단체인 월드비전 관계자들이, 해주 지역엔 모래 채취를 목적으로 방북한 사람들이 각각 체류 중이라고 천 대변인은 덧붙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북한이 우리 국민을 억류했다면 북·중 접경지역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하고, 주중 한국대사관 등 현지 채널을 총동원해 상황 파악에 나섰다.

25일 중국 단둥에서 본 북한 신의주 풍경. 농기구를 든 농부들이 논 위를 걸어가고 있다. [신의주 로이터=연합뉴스]

◆어디서, 누가 붙잡혔나=통상 북·중 국경지역에서 걸어서 북한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두만강 상류인 옌볜 조선족 자치주 카이산(開山) 일대, 북한의 남양과 접경한 중국 투먼 일대, 압록강 상류인 백두산 남쪽의 창바이(長白) 조선족 자치현 등지가 꼽힌다. 북한이 국경지역에서 우리 국민을 억류했다면 억류 장소는 투먼·남양 지역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현지 교민들과 탈북·납북자단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이날 “북한의 국경 경비대 관계자가 ‘며칠 전 투먼 지역에서 남조선 국적자 4명이 우리 영토로 들어왔다. 이들은 우리의 각하를 보러 왔다고 말했다’고 우리의 중국 측 소식통에게 전해왔다”고 말했다.

억류자들의 신원과 관련해선 북·중 접경지역에서 포교활동을 벌이거나 탈북자들을 도와온 선교사나 인권운동가일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베이징의 한 대북 소식통은 “옌지·투먼·단둥·선양 등 북·중 국경지역에는 한국인 선교사가 1000명이 넘는다”며 이같이 추정했다. 탈북자나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출신 인사가 억류됐을 것이란 추정도 나오고 있으나, 북한이 성명에서 ‘남조선 주민’이라 못 박은 만큼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의 기획?=북한이 억류했다고 밝힌 사람 중 한 명은 지난달 8일 투먼 지역에서 두만강을 건너 월북한 30∼40대 한국인 남성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옌지시에서 택시기사를 하고 있는 교민 전모씨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40분쯤 서울발 비행기로 옌지국제공항에 내린 이 남성은 자신의 택시를 타고 투먼에서 훈춘 방향으로 2㎞ 떨어진 지점까지 이동한 뒤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넜다. 그러자 북한 경비병 10여 명이 나와 그와 대화를 나눈 뒤 그를 데리고 어디론가 이동했다고 전씨는 전했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에 여러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경우는 드물다”며 “북한은 이 남성을 포함해 따로따로 입북한 남한 국적자들을 한데 묶어 억류 사실을 발표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남 협상 카드 등으로 활용하기 위한 북한의 ‘기획’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서울=강찬호 기자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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