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소녀의 소원, 2010년 숙녀 돼 풀다…4년 기다림 웃음으로 마무리한‘퀸 연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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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연아가 16세였던 2006년 그랑프리 파이널 갈라쇼에서 연기하는 모습. 김연아는 2006년 1월에 열렸던 토리노 겨울올림픽 때 나이 제한에 2개월이 모자라 출전하지 못했다.

“네 원을 풀었구나, 연아야.”

김연아의 올림픽 금메달이 확정된 직후, 어머니 박미희씨는 “14년간 이 순간만 기다리면서 피겨를 했는데, 연아가 드디어 원을 풀었다”고 했다. ‘평생 소원’을 이루기까지 김연아는 수많은 고비를 넘었다. 그리고 당당히 세계 피겨의 여왕으로 거듭났다.

◆2개월 차이로 못 나간 토리노 올림픽=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하면서부터 김연아의 눈은 올림픽을 향했다. 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을 보면서 김연아는 ‘내 꿈의 실체가 바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김연아는 그때부터 ‘겨울올림픽 놀이’를 즐겼다. 가장 좋아하는 피겨 스케이터 미셸 콴(미국)을 흉내내 프로그램의 동작과 표정 연기를 따라 하곤 했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때 김연아는 출전 연령 하한선에 딱 2개월이 모자라 출전하지 못했다. 2005~2006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과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를 잇따라 제패하며 절정의 기량을 뽐냈던 김연아는 아쉬웠지만 4년 뒤를 기약했다.

◆부츠와 부상, 눈물의 슬럼프=매일같이 차가운 빙판에서 외롭게 훈련하던 김연아는 두 차례 은퇴 위기를 넘겼다. 처음 은퇴를 선언한 건 2003년 2월. 당시 김연아는 겨울체전을 앞두고 무리하게 연습을 하다가 발목 인대가 늘어나 버렸다. 첫 부상을 겪은 김연아는 힘겨운 마음에 “피겨를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체전 우승 이후 “내 팔자는 피겨를 할 팔자구나” 하며 다시 빙판 위로 돌아왔다. 이후에도 김연아는 2006년 11월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았고, 2008년 1월 고관절 부상에 시달렸지만 묵묵히 아픔을 이겨냈다.

두 번째 은퇴 선언은 2006년 5월에 나왔다. 스케이트 부츠 때문이었다. 4개월을 신어야 하는 스케이트화가 일주일만 신으면 자꾸 무너져 내렸다. 아무리 다른 부츠를 신어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맞지 않는 부츠를 신고 운동하는 건 감당하기엔 너무 큰 고통이었다. 김연아의 어머니는 대한빙상경기연맹에 “연아는 은퇴하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연맹은 수차례 김연아의 가족을 설득했고, 마음을 돌린 김연아는 다행히 자신의 발에 딱 맞는 부츠를 찾아냈다. 올림픽 때도 신었던 ‘리스포르트’사의 부츠다.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성숙한 연기로 금메달을 거머쥔 김연아의 다양한 얼굴 표정. [임현동 기자, 중앙포토, 밴쿠버 AP=연합뉴스]

◆2년간 갈고닦은 프로그램=2008~2009시즌부터 김연아는 본격적인 ‘올림픽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밴쿠버 올림픽에 맞춰 체력과 컨디션을 절정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이었다. 매 시즌 부상에 시달렸던 김연아는 2008년 10월부터 물리치료사와 함께 체력을 끌어올리는 한편, 2010년 2월 말에 맞춰 신체 사이클을 조절해 왔다. 훈련 프로그램 역시 힘들기만 한 체력훈련을 벗어나 피겨에 맞는 부드러운 운동으로 바꿨다.

올림픽을 위한 프로그램의 뼈대도 2008~2009시즌 완성했다. 김연아가 올림픽에 들고 나온 프로그램은 점프·스핀·스파이럴 등 기술 구성이 지난해 프로그램과 거의 같다. 김연아는 이에 대해 “그 프로그램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바꿀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선수는 가장 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올림픽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밴쿠버=온누리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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