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넷키즈] 下. 흔들리는 가치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한쪽이 허물어져 해골이 드러난 얼굴, 온몸이 갈가리 찢겨진 알몸 사체…. 10대 넷키즈들이 꾸민 개인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이런 흉측한 장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런 사이트를 갖고 있는 중학생 넷키즈 L군은 " '엽기(獵奇)적이라서 좋다' 는 반응이 많아 신이 났다" 고 말한다.

그는 "(우리는)늘 황당하면서도 신기한 걸 찾는다" 며 "대화도 어른들이 모르는 말로만 한다" 고 했다.

한국심리학회 문성원(文聖媛.35)박사는 "자아 정립이 덜 된 청소년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딴 세상을 살고 있다" 며 "결국 교육.정서.문화적 해악으로 나타날 것" 이라고 지적한다.

◇ '엽기' 를 즐긴다〓지난 한해 인터넷에서 가장 인기있는 검색어 순위 7위에 오른 단어 '노란 국물' . 3분 남짓한 분량의 컴퓨터 동영상 이름이다.

젊은 일본 여성이 자신의 손을 입안에 넣어 그릇 가득 토한 뒤 다시 들이켜는 역겨운 장면. 최근 크게 유행한 동영상 파일 중엔 갖가지 상황에서 다양한 형태로 용변을 보?모습들도 있다.

변태적인 체위의 동성연애.집단 섹스.수간(獸姦) 등 비정상적인 성욕망을 다룬 홈페이지의 운영자 대부분도 넷키즈다.

서울지역 중.고등학생연합회장 張여진(17)양은 "마땅한 놀이문화를 찾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새로운 놀이문화일 뿐" 이라며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자신들만의 문화를 갖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 그들만의 언어〓지난 8일 밤 S채팅 사이트에 '고딩만^^(고등학생만.옆의 기호는 웃음표시)' 이라는 이름으로 개설된 채팅방의 대화 일부.

A:우위쒸. 무쟈게 짱난당. (에이씨. 짜증나는 일이 많다)

B:허걱. @@□(놀람을 표현하는 감탄사.왜□)

A:남친이 문자 씹었어…. (남자친구가 휴대폰 문자메시지 답장을 안했어)

B:글쿠나…. ㅠㅠ. (그렇구나. 흑흑)

이처럼 약어.은어.특수어가 그들만의 언어.문자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성균관대 국문학과 박양규(朴良圭)교수는 "기성세대와 단절의 골이 깊어질까 우려된다" 고 말했다.

◇ 교사는 지탄 대상〓 "선생이면 다냐. 때리고 욕하는 게 취미냐" "학부모한테 돈 뜯는 재주만 뛰어난 ×. "

지난해 '학교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자' 며 몇몇 인터넷 업체들이 개설한 '안티 학교' 사이트에 올랐던 글이다.

결국 정보통신윤리위에 의해 폐쇄됐다. 하지만 각 학교들의 홈페이지는 여전히 이런 식의 욕설장이다. 얼마 전엔 교장을 괴물로 묘사한 사진을 올린 중학생이 경찰에 적발됐다.

◇ '컴퓨터 천재' 들의 항변〓지난 7일 유료 폭탄 사이트를 운영하다 경찰에 연행된 중3생 金모(15)군은 "폭탄을 내다 판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죠" 라고 되물었다.

지난해 12월 자기 홈페이지를 통해 인기연예인의 성행위 비디오 파일을 유포해 구속된 元모(17)군. 그는 검찰에서 "돈 안받고 무료로 나눠줬는데 오히려 좋은 일 아니냐" 고 따졌다.

지난해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가 적발한 해킹.바이러스 유포 등 1백27건의 사이버테러형 범죄 중 51건은 10대들에 의해 저질러졌다. 이들은 대부분 "장난 삼아" "실력을 시험해 보려고" 라고 말했다.

손민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