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션 피플] '우리 밀 살리기' 내가 앞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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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요즘 지리산 노고단 자락에 자리잡은 전남 구례군 광의면 구만리를 찾으면 우리 밀이 파릇파릇 싹을 틔우는 모습을 어느 밭에서나 볼 수 있다.

1984년 밀 수매가 중단되면서 한때 종자마저 사라졌던 우리 밀이 구만리를 중심으로 광의면의 주요 농산물로 부각된 것은 불과 10여년전이다.

우리 밀을 살린 주인공은 영농법인 우리밀 구례공장 대표이사 최성호(崔成浩·59)씨.

가톨릭농민회 전남도지회장,가농 전국 부회장 겸 전남도 농어민조사부장 등의 경력이 말해주 듯 그는 운동권 농민이다.

구례 고등공민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崔씨는 열혈 청년이었다.마을 청년회와 독서그룹을 조직,운영하면서 70년대에는 장상환·박진도 등 재야 학자들이 주도한 농민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우며 농촌 문제에 눈을 떴다.

5공 시절엔 물세(水稅)를 현물로 납부하는 수세폐지운동,6공때는 바다 구경도 제대로 못한 산골 농민이 전남도내 어촌을 돌며 어민 권리찾기와 의식 계몽에 앞장서기도 했다.

가농 1세대 농민으로 현장에서 활동에 몰두했던 崔씨는 2선으로 퇴진한 89년부터 농사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물밀 듯 밀려드는 외국 농산물과 승부를 겨룰려면 2천년 동안 우리네 식탁을 차지한 밀을 생산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농민마저 외면한 우리밀 재배에 뛰어들었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농촌진흥원과 토속 밀을 재배하는 농가 등지에서 겨우 종자 15㎏을 구해 자신의 밭 4천평에 심고 광의면 농민들을 상대로 우리밀 살리기 운동을 펼쳤다.

그는 “제분공장이 한 곳도 없는데다 생산 원가면에서 수입 밀가루보다 3배나 비싼 우리 밀을 심기위해 면민들에게 2천년동안 민족의 식량인 점과 식량 안보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회원 50명을 모아 영농법인을 출범시킨 崔씨는 92년 6만평에서 1천5백가마를 수확하는 등 밀밭을 늘려나갔다.

지난해 매출액 11억3천만원에 순수익금 5천5백만원을 올린 崔씨는 올해 60만평에서 1만2천가마를 수확할 것으로 보고있다.영농법인은 이제 부채가 한 푼도 없고 여유자금 4억원을 보유할 정도로 탄탄해졌다.

崔씨는 “국내 밀 소비율에서 우리 밀이 차지하는 비율은 0.02%에 불과하다”며 “국민들이 식량 안보차원에서 우리밀을 사랑했으면 싶다”고 강조했다.

광주=구두훈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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