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좋은 재료 팍팍 쓰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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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업하기 앞서 입맛부터 업그레이드 시켜라. 맛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미묘한 차이를 느낄 줄 알아야 한다.

■ 음식의 맛보기와 객관적인 평가를 매일 습관적으로 하라. 약간의 방심이 손님들을 한순간에 떨어지게 한다.

■ 적성에 맞는 음식을 선택하라. 평소 자주 접했던 음식, 남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골라야 흥미가 생겨 더욱 매진할 수 있다.

"음식점을 하고 싶다고요? 길에서 전단지를 줄 때 꼭 받는가요, 친구들하고 밥 먹을 때 밥값 먼저 계산하는가요. 둘 중 하나라도 안한다면 식당 열 생각 아예 말아야 합니다. 두 경우 모두 다른 사람에 대한 무의식적인 배려를 엿볼 수 있거든요. 식당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겠다는 마음가짐이 밥장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경기도 일산에서 등촌 샤브 칼국수 집을 운영하는 이호진(50)씨는 정치판에서 본 쓴 맛을, 서민을 위한 얼큰하고 시원한 국수맛으로 바꿔 성공한 사람이다.

"의원보좌관 생활을 하다 1996년 총선에 출마했으나 무참히 떨어졌죠."

가지고 있던 땅이며 오피스텔을 판 돈 5억원가량을 몽땅 쏟아부은 선거에서 지고나니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당장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적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식당 말고 뭐가 있겠어요. 다행히 돌아가신 할머니가 한정식집을, 어머니가 갈비집을 하셔서 어릴 때부터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게 있어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었죠."

그는 칼국수를 주메뉴로 선택했다. "'고기집은 10년 지나면 망하지만 분식집은 10년 지나면 그 건물을 산다'는 어머니 말씀이 떠올랐죠. 고기나 해산물같이 유통에 의존하는 음식점보단 독창적인 맛을 낼 수 있는 '제조' 식당에 승부를 건 겁니다."

보통 사람들이 '외식하자'고 할 때면 으레 고기를 먹으러 간다는 점에 착안, 샤브 칼국수를 시도해봤다. 식당을 내기 전 아내 유정혜(45)씨와 함께 요리법을 달리하며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등 공을 들였다.

"음식 심사는 당시 초등학교 다니던 우리집 두 아이가 했어요. 애들이 어릴 때부터 어머니집 드나들며 나름대로 입이 고급이었거든요. 열번만에 간신히 아이들로부터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죠."

그렇게 해서 25평 남짓한 등촌 샤브 칼국수 집을 시작했다. 칼국수가 얼큰한 데다 싼 가격에 고기도 먹을 수 있다는 입소문을 타고 금세 손님들로 넘쳐났다. 칼국수 4000원, 샤브샤브는 6000원이라 평일엔 근처 중.고교 학생들도 많이 찾는다. 꾸준한 인기비결은 오르락내리락하는 재료비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정직하게 음식을 만드는 것.

"야채값이 두 배로 뛰면 '재료를 좀 덜 쓸까'하는 유혹이 생기죠. 주인은 속였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손님들은 그 미묘한 차이를 귀신같이 알아챕니다." 그의 귀띔이다.

음식점을 차린 지 8년. 그의 가게는 지금 150평 규모, 하루 매출 400만원으로 성장했다. 기술 전수를 해준 곳만도 1500여곳이나 이르러 '등촌 샤브 칼국수'는 이제 전국에서 맛볼 수 있다.

"국회의원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이 정도 성공이면 음식업계에서 금배지 달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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