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돋보이는 생활밀착 지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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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어쨌든 음력이란 참으로 신기한 달력체계다. 수은주는 아직 영하를 가리키고 있지만 창으로 비치는 햇살은 벌써 따사롭다.

올해는 참으로 춥고 눈이 많은 겨울이었다. 집안에서 춥게 지내는 것도 아니면서 봄을 기다리게 된다.

더구나 정치는 뒤숭숭하고 우리 사회의 병폐는 드러나기만 할 뿐 도무지 개선될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으니 솔직히 아침에 신문을 보기가 싫다.

정치면을 그냥 넘겨버리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일은 아니리라. 그런 면에서 분수대의 기사(1월 28일자)는 눈길을 끌었다.

봄과 이탈리아의 성희롱 판결을 소재로 삼은 글이었다.

이탈리아 최고 형사 항소법원이 며칠 전 "돌발적이며 충동적인 경우 궁둥이를 가볍게 치는 것은 성희롱이 아니다" 라고 판결한 데 대한 기사였다.

나는 이탈리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그 나라 최고 형사 항소법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보지도 못했지만 눈을 감고도 점쟁이처럼 맞힐 수 있는 일은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그 법원의 판결이 남자들에 의해 내려졌을 거라는 것이다.

사실 법률이라는 것도 정의에 의해서라기보다 현실의 힘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결국 그 나라의 성희롱 법이 그 나라 여성들의 힘의 세기를 말해주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최근 들어 여성 여러분과 뜻 있는 남성들의 자기 희생과 용기에 힘입어 성희롱법이 제정되고 많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이지만 주변에서 들리는 직장 내의 성희롱 소식은 그칠 줄을 모른다.

이것이 비단 힘없는 생산직이나 사무직 여성들의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더욱 경악하게 한다.

대학교수인 여성에서부터 전문직에 이르는 여성까지 일상에서 행해지는 갖가지 성희롱의 횡포는 그칠 줄을 모른다.

사실 나는 이제 남자들의 각성이나 양심의 개선을 바라는 순진함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누가 음주운전을 하고 싶지 않겠는가. 누가 바로 눈앞에 들어오는 신호등의 빨간불에 정차해서 다음 신호를 기다리고 싶겠는가.

우리가 음주운전을 하지 않고 신호를 기다리는 이유는 사실 그 행위에 대한 대가가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성희롱법이 좀더 구체적이고 강력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여성들이 바라는 것이 "돌발적이며 충동적인 경우 남자의 국부를 여성 상사가 손으로 가볍게 희롱하는 것은 성희롱이 아니다" 라는 판결은 아니지 않은가.

유럽연합(EU)의 광우병 전세계 확산(1월 28일자 1면,3면)이라는 기사도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다.

실제로 나는 지난 12월 아무런 정보도 갖지 못한 채 유럽을 여행하면서 쇠고기를 먹은 기억 때문에 내내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유럽산 소시지나 화장품 심지어 젤리도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불안은 더욱 커져만 갔다.

정말 우리나라의 쇠고기는 안전한 것인지, 수입 화장품에 대한 검사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게다가 소의 태반에서 뽑아낸 추출물이 주로 여성의 주름을 방지하는 화장품에 많이 쓰이고 있을 뿐더러 각종 연고제 역시 안전하지 못하다고 하는데 전 지구화 시대에 더욱 많은 정보가 필요하리라고 본다.

왕따 당한 학생 30%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기사(1월 23일자 22면)도 나를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비단 왕따뿐이겠는가 가만히 놔둬도 우리 아이들은 이미 정신병에 걸릴 지경이 아닌가.

교육문제 기사는 아무리 읽어도 부족하게 느껴진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이 나라에 살아야 하고 그 아이들에게 나의 미래를 의탁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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