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해외건설협 김대영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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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외화획득의 주력 업종 가운데 하나인 해외건설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해외신인도가 떨어지면서 돈을 제대로 빌리지 못하다보니 공사 따기가 어려워졌다.

기술이나 정보도 뒤져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은 날로 떨어지고 있다.

중앙일보 자회사인 조인스랜드에서 김대영(金大泳)해외건설협회장을 만나 해외건설의 문제와 회생방안을 들어봤다. 편집자

-외환위기 이후 해외건설 수주가 확 줄어들고 전망도 불투명하다.이제 정말 해외건설에서 손을 놓아야 할 때인가.

“무슨 소리냐.해외건설 시장은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 외화획득의 보고(寶庫)다. 외화획득의 여부를 떠나 만약 공사를 못해 처수한다면 3조5천억원어치나 되는 장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요즘 어려워진게 사실이지만 어떤 경우가 있어도 손을 놓아서는 안된다. 원인을 찾아보면 해외건설을 살리는 해법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최근의 부진 이유는 뭔가.단순히 수주경쟁력이 떨어진 것만은 아닐텐데.

“우리 업체들의 신인도 하락이 가장 큰 원인이다.국제입찰이나 시공에 필요한 국제 금융시장 ·국내은행의 보증이 안되고 금융지원도 막혔다.여기에다 주력이던 단순 토목 ·건축공사의 경쟁력을 잃었으며, 플랜트 등 고부가가치 공사는 선진국에 밀리고 있다. 이런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지난해는 해외공사를 54억달러어치 밖에 따내지 못했다.”

-국내 건설시장도 급속히 개방되고 있다.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다면 국내시장에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세계무역기구(WTO)체제 출범 이후 각국 건설시장이 열리면서 글로벌화하고 있다.우리가 해외시장을 뚫지 못한다면 앞으로 국내건설시장도 제대로 챙기지 못할 것이다.단순히 해외공사를 따고 못따고가 아니라 국내시장을 제대로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해외시장을 지켜야 한다.”

-업체들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공사 보증이다.제도적으로 보증이 쉽지 않다면 프로젝트별로 분석해 보증서를 끊어줄 여지도 있지 않나.

“해외공사 보증의 모든 제도·관행이 기업신용에 따라 집행됐다.워크아웃·법정관리 기업이 늘고 현대건설 사태 등으로 신용이 떨어졌는데도 과거 기준에 맞추다 보니 보증이 막힐 수밖에 없다.지금은 신용보다 프로젝트의 수익성에 따라 보증해주는 시스템으로 바뀌는 과정이다.”

-대안으로 역외(域外)보증기관 설립도 추진되고 있다는데.

“프로젝트별 보증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금융권을 중심으로 프로젝트 평가기관을 만들어야 한다.현재 해외건설협회와 정부 주도로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국제금융공사(IFC) 등이 참여의사를 밝혀와 3월께면 가능할 것 같다. 이럴 경우 보증수수료율을 0.8% 정도로 싸게 제시하면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지금처럼 해외 발주처들의 요구대로 국내은행과 외국은행의 복(複)보증을 받다보면 수수료율이 최고 3% 정도에 이르러 입찰에서 항상 불리했다.”

-요즘 해외건설시장에서는 금융요구 공사(개발형 프로젝트)가 부쩍 늘었다.보증에 못잖게 금융지원도 무척 중요한 부분인데.

“개발도상국의 민간 인프라 투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1991년 1백78억달러에서 98년엔 1천2억달러로 신장했다.이런 공사의 대부분은 시공업체가 돈을 대고 공사하는 것이다.그러나 최근 국내업체들의 신인도가 떨어져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지난 96년만 해도 우리업체들 수주물량의 31%에 달했던 금융요구 공사의 비중이 지난해는 1.5%에 불과했다.이러다보니 수주액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해외 인프라펀드를 빨리 만들어 우리업체들의 해외공사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

-해외건설 침체의 근본 원인을 금융부문의 취약성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우리업체들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도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지 않나.

“지금까지 토목·건축 등 단순공사의 경쟁력이 비교 우위에 있었던 게 사실이다.그러나 이제는 후발 개도국과 현지업체에 자리를 내줬다.앞으로 플랜트 등 설계·구매·시공 일괄발주 공사로 눈을 돌려야 한다.EPC공사 시장은 지난해 6백20억 달러이나 우리업체가 수주한 것은 20억 달러에 불과하다.지난해 S사가 사우디아라비아의 3억 달러짜리 공사에 입찰했으나 시공능력 심사에서 탈락했던 적도 있다.당장 기술력을 높일 수 없으므로 단기적으로 외국 선진업체와 전략적 제휴가 필요하다.”

-실적을 중시하다 보니 마구잡이식으로 수주해 적자공사도 많았는데.

“문제는 있지만 점차 수익성 중심의 수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앞으로는 국책은행 보증을 받으려면 사업성 평가를 거쳐야 하므로 많이 개선될 것 같다. 특히 업체별 ·지역별 ·분야별 전문화가 시급하다. 예컨대 현대건설은 중동·동남아,SK건설은 멕시코 등으로 지역별 집중화를 추구하면서 플랜트 ·항만 등 분야별 특화도 추진해야 한다.”

-우리업체 진출이 많은 동남아·중동 국가들이 자국(自國)업체 보호에 적극 나서고 있다.현지화도 필요하지 않나.

“이란과 베트남의 경우 40%가 현지업체에 하청을 주게 돼있다.우리업체는 시공관리와 자재·장비 조달에 주력할 정도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은 현지업체와 공동입찰을 의무화하고 있다.이제 현지화는 세계적인 추세다. 현지화에 잘 적응하는 것이 경쟁력이다.”

-국내 업체들의 정보수집능력 역시 취약하다는 지적이 많은데.

“그렇다.이제까지 우리는 아시아개발은행(ADB)등이 주는 차관공사 정보에 많이 의존했다. 그러나 민간공사가 많아지는 대신 차관공사는 점점 줄어들어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또 이 정보는 누구든지 알 수 있으므로 정보라고 할 수 없다.일본의 경우 해외건설 정보수집에만 연간 3억 달러 정도 쓰는데 우리는 한 푼도 없다. 각국 발주처의 동향을 훤히 꿰뚫어보는 ‘정보스파이’(정보제공 전문업체)를 이용해야 한다. 정보가 곧 수주이고 미래산업에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정부가 나서야 한다.”

-앞으로 세계 건설시장을 전망한다면.

“각국 건설시장이 열리고 규모도 커지고 있다.지난 70∼80년대만 해도 우리의 해외시장 점유율이 6%였다. 5년후 세계시장 규모를 연간 3천억달러로 본다면 매년 1백80억달러 정도는 따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한가지만 보완돼서는 안된다. 제도적 지원과 업체들의 경쟁력확보, 전략수정 등이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마치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고 굴러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 하듯이 수주물량을 확보하면서도 동시에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대담 및 정리=황성근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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