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놀이·한글 배워 … 감옥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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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것은 버선이라고 합니다. 한국 전통의상의 양말이라고 볼 수 있어요.”

23일 오후 충남 천안시 성거읍 옛 천안교도소. 외국인 10명이 둘러앉은 가운데 한국 전통 문화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외국인들은 한복을 걸치고 어설프게 저고리 고름을 매고 있었다. 마치 주한 외국인이나 관광객을 상대로 한 ‘한국 문화 체험 행사’ 같았다. 하지만 이것은 천안 외국인 전담 교도소가 외국인 수형자들을 대상으로 연 문화 교육 현장이다.

외국인 수형자를 전문 수감하는 ‘천안 외국인 전담 교도소’가 23일 세계 최초로 문을 열었다. 외국인 수형자들이 교도소에서 운영하는 전통 예절교육을 받고 있다. 출소 후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해 한글도 가르친다. 재소자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했다. [천안=오종택 기자]

법무부는 이날 천안 외국인 전담 교도소(옛 천안 교도소) 개청식을 열었다. 외국인 수형자를 전문 수감하는 세계 최초의 교도소다. 외국인 전담 교도소는 대지면적 41만3257㎡(12만5229평) 규모로 49개 건물이 있다. 여러 명이 수감되는 혼거실(15.48㎡) 238개, 혼자 수감되는 독거실(6.48㎡) 120개를 갖췄다. 수용 정원은 1230명인데 현재 854명이 수감돼 있다. 수형자 854명 중 591명이 외국인이다.

최윤수 교도소장은 “대전·수원 등지에 흩어져 있던 외국인 수형자 중 한국 교도소 생활에 적응하기 힘든 이들을 먼저 이곳으로 데려왔다”고 설명했다. 교도소 측은 국적과 문화가 같거나 비슷한 수감자들은 최대한 같은 방에 수용했다. 수감자들은 자국 위성방송 시청도 가능하다.

교도소 측은 국제협력과를 신설해 한국 주재 대사관과 협력을 강화했다. 또 외국인 수형자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외국어에 능한 교도관 9명을 특별 채용했다. 러시아·스페인어 등 6개 국어 통역을 지원한다.

교도소 중심에 위치한 ‘문화의 집’에는 전통문화체험장·특별활동실·DVD 상영관 등 다양한 문화생활을 위한 공간이 마련됐다. 한국 전통문화 수업은 신청자에 한해 10명씩 돌아가면서 참여할 수 있다. 2주에 한 번씩 두 시간 동안 한복을 입어보고 다도(茶道)를 배운다. 자국 언어로 자막 처리된 DVD도 일주일에 한 번씩 감상할 수 있다. 모범수 40명을 선발해 원예·배관·이용 기술을 가르친다. 30명을 대상으로 한글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식사는 한식·외국인식 두 가지로 제공한다. 외국인 수형자들의 하루 식비는 4260원. 쌀과 야채보다는 밀가루·육류가 많이 들어간 식단이라 국내 수형자들 하루 식비(3430원)보다 높다. 하지만 종교나 문화에 따라 식단을 따로 제공하지는 않는다.

외국인 전담 교도소가 만들어진 이유는 국내 외국인 수가 120만 명에 이르면서 외국인 범죄자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2010년 2월 현재 전국 교정시설에 수용된 외국인 수형자는 총 1504명(42개국)에 이른다. 2006년 621명, 2008년 1407명에 비해 급격히 늘어났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외국인 전담 교도소 운영으로 외국인 수형자의 인권 개선과 함께 해외 교정시설에 있는 한국 수형자들에 대한 처우도 나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한국인 수감자가 외국인 수감자들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출감한 정모(51)씨는 “내국인 수감자에 비해 외국인 수감자의 식사 단가가 훨씬 높다”며 “외국인 수감자들의 처우를 높이기에 앞서 국내 수감자들의 형편 없는 대우를 먼저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천안=홍혜진 기자
사진=천안=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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