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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키우려면 입시경쟁 불가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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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온 나라가 고교등급제로 떠들썩하다. 고교등급제를 시행했다는 대학들 길들이기에 교육인적자원부는 입학정원 감축과 재정지원 감축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빼들었고, 해당 대학들은 내신 부풀리기의 실상을 폭로하겠다고 맞섰다. 필자는 4, 5년 전 전국 70여만명의 내신과 수능 성적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다. 전국 2000여개 고등학교의 극에 달한 내신 부풀리기와 천차만별인 수능 실력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당시 교육부가 실상을 감추기에 급급하기에 그 일부를 공개하게 됐다. <본지 2000년 12월 14일자>

그동안 이러한 실상이 더했으면 더했지 수그러들었다고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사교육비 절감을 목적으로 시행돼 온 교육부의 고교 평준화, 본고사 금지, 하나만 잘하면 대학 가기, 쉬운 수능, 수시입학 등의 모든 정책은 과외 과열, 공교육 황폐화, 고교 간 실력차 격화라는 연쇄적 결과로 나타났다. 가장 큰 문제는 고교생들의 실력을 전반적으로 대폭 저하시켜 소위 일류 대학의 신입생이 영어 원서를 못 읽고, 기초 미적분도 모르는 현실이다. 정말로 나라의 장래가 걱정된다는 대학 교수들의 지적에 교육부는 애써 나몰라라 해왔다.

얼마 전 별다른 특기는 없으나 공부에 꽤 소질이 있는 어느 중3 자녀의 부모가 특목고에 진학할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필자에게 조언을 구했다. 현재의 2008학년도 교육부 정책 하에서 정답은 뻔하다. 일반 고등학교에 보내 내신 1등급을 받는다. 특목고에서 내신 1등급을 받는 것보다 훨씬 쉽다. 또한 인근 학원에 보낸다. 그 학교의 시험문제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능 1등급 안에 든다. 1등급 비율이 종래보다 늘었고 같은 등급 내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으니 구태여 지원 학과가 제한되는 특목고에 가 어렵게 경쟁할 필요가 없다.

대학 간에는 분명히 서열이 있다. 전통.시설.교수 등에 차이가 있어 일류 대학이 있고, 모두 일류 대학에서 공부하려 한다. 대학들도 이왕이면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가르치려 한다. 당연히 여기엔 경쟁이 뒤따라 열심히 공부하고 가르친다. 이러한 경쟁이 국가 발전의 토대다.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해 소질이 있는 학생은 더욱 소질을 계발시키는 제도 없이는 국제경쟁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교육부는 어떻게 하면 경쟁시키지 않을 수 있나에 몰두하고 있는 듯하다. 경쟁의 여지를 없애는 3불 정책을 더욱 강화한다고 한다. 이래서는 교육부가 없어야 우리나라 교육이 제대로 된다는 소리를 우스갯소리로만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라도 교육부가 허심탄회하게 실상을 밝히고 근본적으로 정책과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소위 '연좌제'가 아닌 합리적인 고교등급제의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부가 실상을 밝혀야 한다. 고교별로 평어(수.우.미.양.가)의 비율과 졸업생들의 수능 평균점수만 밝히면 된다. 엄연한 실상을 숨기고 잘못된 제도를 계속 고집하면 우리나라는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다.

그러나 아주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논술을 치르든, 심층 면접을 보든, 본고사를 치르든 대학 자율에 맡기는 것이다.

김성인 고려대 교수.산업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