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황동규 '조그만 사랑노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어제는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 황동규(64) '조그만 사랑노래'

'추위 환한 저녁 하늘' 이란 말이 좋다. '눈뜨고 떨며 떠다니는' 이란 말도 좋고, '우리와 놀던 돌' 이란 말도 좋다.

'찬찬히 깨어진 금들' 이란 말도 좋고, '그대를 따르던 길들이 문득 사라지던' 이란 말도 가슴 캄캄하게 한다.

이 시는 눈발 속에 서있는 한 그루의 푸른 소나무처럼 우리 가슴속에 떠오르는 아스라한 한 장의 수채화다.

아, 그 겨울의 동여맨 편지.

김용택(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