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칼럼] 로비력이냐 군사논리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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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부는 다가올 한반도 주변 안보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차세대전투기 사업'(F-X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총 예산 4조2천여억원으로 장거리 타격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최신예 전투기 40대를 오는 2007년까지 해외에서 직구매한다는 것이 사업의 골자다.

여기에는 미국의 F-16과 러시아의 수호이(SU)-35,프랑스의 라팔,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4개국이 참여하는 유러파이터 등 4개의 기종이 뛰어들고 있다.

공군도 지난 연말까지 군내 전문가들을 현지에 파견,이들 4개 기종에 대한 1단계 성능평가를 마치고 돌아왔다.

이들 시험평가단은 각 기종을 대상으로 ▶전투행동 반경 ▶무장 탑재능력 ▶공대공(空對空) ·공대지(空對地)교전능력 ▶안전성 등 평가기준을 놓고 정밀한 비교·분석작업을 벌이고 있다.

합참과 국방부는 공군의 최종 평가보고서를 토대로 심의에 착수,늦어도 오는 7월까지는 이 가운데 한 기종을 최종 선정해야 한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4조2천억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관련 업체들의 수주(受注)경쟁도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더우기 이번 싸움은 미국과 러시아,유럽 여러나라들간에 벌이는 국제전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A사의 경우 이미 지난 연말부터 최근까지 국내 주요 일간지에 두 차례나 전면광고를 냈다. 이것만 해도 국내에서는 전례없는 일이다. B사도 이에 질세라 거물급 로비스트를 영입, 치밀한 물밑 작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C, D사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국가대 국가간에 이뤄지는 대규모 무기거래에는 로비가 있기 마련이고,심지어는 국가 정상(頂上)까지도 직접 나서는 게 작금의 국제 현실이다.

문제는 이들의 로비에 우리 정부가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기종선정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주어진 예산(가격)과 함께 사용군(使用軍)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F-X 같은 대형 국책사업은 업체들의 집요한 대(對)정부 로비나 정치 ·외교적인 논리에서 벗어나 순수한 군사적 논리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기종선정까지는 6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베테랑 국제 로비스트들의 유혹에 우리 정부가 얼마나 초연한 자세를 견지할 것인지 정말 관심사다.

김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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