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인 유학생 희생 막을 특단의 대책 세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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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러시아로 공부하러 갈 생각이 있다면 생명보험부터 들어야 할 판이다. 졸지에 변을 당해 목숨까지 잃는 위험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 유학생이 러시아 청년들의 폭행으로 생명을 잃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단기 어학연수차 알타이 국립사범대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던 강모씨가 지난주 러시아 중부 바르나울시에서 현지 청년 3명에게 폭행을 당해 숨졌다. 러시아 경찰은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용의자 3명을 붙잡아 조사 중이다. 금품을 노린 범행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인종주의적 범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 유학생이 러시아에서 인종차별적 범죄의 희생양이 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공개된 것만 3건이다. 2005년 2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0대 한국인 유학생 2명이 흉기에 찔려 부상했고, 2007년 2월에는 한국인 유학생 한 명이 집단구타를 당해 치료를 받다 숨졌다. 지난해 1월에는 단기 어학연수 중이던 한국인 여학생이 인화성 물질을 이용한 화상(火傷)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러시아 정부는 인종범죄 척결 의지를 내세우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에서는 국수주의와 네오나치즘에 경도된 청년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모스크바에서만 현재 20여 개의 ‘스킨헤드’ 조직이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러시아 젊은이의 약 15%가 극우민족주의에 동조하고 있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지난해 러시아에서 인종범죄로 숨진 외국인은 71명이다. 2008년의 110명보다 줄었다는 것이 그 정도다.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폭력을 휘두르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는 나라에 투자를 하고, 공부를 하러 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종범죄는 러시아 정부가 내세우는 법치주의와도 양립할 수 없다. 러시아는 국가의 미래가 걸린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 강씨 사건의 진상부터 철저히 밝히고, 엄벌로 응징해야 한다. 같은 사건이 또 발생한다면 문명국 명단에 러시아가 낄 자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