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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철강싸움' 왜 타협 못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금이 집안 싸움 할 때입니까. "

연초부터 재연되고 있는 포항제철과 현대자동차그룹간의 철강분쟁을 지켜본 철강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포철과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강관은 최근들어 매일 언론 발표문을 내면서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포철은 국내 냉연업체가 심각한 공급과잉 상태이므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현대강관은 내수 위주로는 일본업체에 국제시장을 빼앗길 수 있고, 국제 철강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생산설비를 감축하는 구조조정은 필요없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분쟁의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분쟁의 발단은 지난 1997년 현대강관이 율촌에 1백80만t 규모의 냉연공장을 착공한데서 비롯됐다.

현대강관은 포철에 냉연강판의 원료가 되는 핫코일을 공급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 당했다.

수십년 거래해 온 다른 수요처(연합철강.동부제강)의 물량을 줄이면서까지 현대강관에 물량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이 포철의 입장이었다.

양측의 주장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문제는 이처럼 해묵은 분쟁의 결과다.

현대강관은 포철이 외면하자 가와사키제철 등 일본 업체로부터 지난해에만 3억6천만달러어치의 핫코일을 수입했다.

결국 일본 철강업체들만 이익을 보고 있는 셈이다.

대일(對日)철강무역수지는 지난 98년에 겨우 흑자(40억달러)로 돌아섰으나 99년 15억3천만달러에 이어 지난해는 11월까지 5억7천만달러로 갈수록 흑자폭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양측의 분쟁이 장기화 하면 올해 철강 무역수지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일본뿐 아니다. 미국.유럽연합(EU)이 한국산 철강제품에 툭하면 반덤핑문제를 거론하는 등 국제환경도 우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상대가 무조건 물러서야 한다는 주장만 고집하면 결국 외국업체들만 이익을 볼 뿐" 이라며 "포철 유상부 회장과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만나 국가이익을 앞에 놓고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고 말했다.

두 거대기업이 한발짝씩 물러나 합의점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시장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는 바람이다.

김동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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