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 망치는 ‘조급증 교육’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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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호 34면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들려오는 낭보들은 우리에게 스포츠계의 희소식 이상이다. 필자는 10년 이상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온 20대 선수들이 메달을 따는 장면을 보면서 예술 영재들을 떠올렸다. 스포츠와 예술에서 좋은 소식을 들려준 이들의 공통점은 아주 어려서부터 가능성을 보였고 훌륭한 지도자들이 이를 간과하지 않고 올바르게 교육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서 조기 교육과 함께 영재 발굴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우리나라 교육은 한때 횡적인 평등에 치중한 때가 있었다. 교육계에서 높아지는 영재 교육에 대한 관심은 그간 미흡했던 수월성 교육의 보상 작용인 측면이 강하다. 영재 교육은 개인의 완성과 국가 장래를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다.

이제는 예술도 국력이다. 그간 세계 무대로 진출한 한국 예술가들은 개인적인 노력과 부모의 희생으로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이제 국가가 나설 차례다. 영재들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음악의 나라라고 자칭하는 독일에선 영재 교육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예술에 대한 사회적 욕구가 대단히 컸고, 이를 뒷받침할 교육 인프라도 전통적으로 강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지난 50년간 예술 창조자 교육보다는 향유자 교육에 힘썼다. 그 결과 예술 공급자의 위치를 아시아, 특히 한국·중국 등에 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10여 년 전 데트몰트·하노버 국립음대에 영재학교를 설립했다. 필자가 살펴본 이 학교들의 특징은 극소수 정예교육과 강력한 기초교육이었다. 아울러 다른 예술 분야와의 연계교육도 활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 1월 제정된 영재교육진흥법을 바탕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기관인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이 2007년 9월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음악·무용과 전통예술 전반에 대한 교육이 초등학교 3학년부터 이뤄지고 있다. 학생 전원이 국비로 수업을 받는다.

교육부 산하 서울시교육청, 직할시 및 각 도 교육청에 개설된 예술 분야의 영재교육원과 영재 학급은 지난해 60여 개에 달했다. 그러나 영재를 어떻게 판별하며, 그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딱히 정답을 찾기 어려운 현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결할 난제가 있다. 첫째, 지도자의 확보다. 교육 공간 및 교육 기자재는 물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기술뿐 아니라 인격·인품 면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도교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단시일 내에 해결될 수 없다. 유명 대학의 한 실기 지도교수는 어린이들을 지도해 본 뒤 “대학에서 가르치던 그 탄력으로 지도하다 보니 가르치는 나 자신에게 문제가 많더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예술 영재를 위한 지도자의 수준 및 수급을 둘러싼 지역 격차도 심각하다. 영국에서는 영재 학교를 개설하기 수년 전부터 교사 양성에 힘쓴다. 교사의 아동심리학 이수는 필수과정이다. 대학생에게도 그렇겠지만 어린 영재에게는 인격자로서의 스승이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폭넓은 교육이다. 현재 영재 교육원이나 영재 학급은 주말을 이용한 전공실기 위주로 운영된다. 그러다 보니 극히 한정된 기술만을, 좁고 급히 배우게 된다. 많은 영재가 성장해 지도교수 곁을 떠나고 나면 그때부터 성장이 멈추는 경우가 많다. 이는 빨리 실적을 내려는 ‘조급증 교육’에서 비롯된다. 국제 콩쿠르에 일찍 나가게 하고, 대학에 월반으로 진학시켜야 한다는 생각 대신 교육 시간을 확대하는 정책적 고려와 결단이 필요하다.

예술 공급자의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어린 예술가들에게 지식 또는 기교만을 가르치는 것은 큰 실수다. 학생들에게 사회성을 가르치고 도덕과 가치를 알게 하는 것이 더해져야 완벽하다. 요즘 활성화하고 있는 예술 영재 교육이 올바르게 나가고 있는지 예술가와 정책 담당자들이 늘 함께 점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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