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샘] 피카디리 극장도 복합상영관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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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1953년 반도극장이란 이름을 달고 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한 서울 종로3가의 피카디리 극장이 설날 연휴가 끝나면 곧바로 개축공사에 들어간다.

2년 6개월의 일정으로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탈바꿈하는 것. 대략 10~13개의 스크린을 갖출 예정이다.

피카디리의 변모는 어쩔 수 없는 시대조류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갈수록 거세지는 복합상영관의 위세 속에서 영화 한 편을 상영하는 단관으론 다양한 취향의 관객을 끌어들일 수 없기 때문. 공사가 끝나면 강북 최대의 극장이 탄생해 강북 관객들도 강변CGV(11개관).메가박스(17개관)등 강남의 초대형 극장에 버금가는 서비스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일곱 개의 스크린을 가진 서울극장과 숨막히는 경쟁체제에 들어가는 동시에 오랫 동안 '극장의 거리' 로 이름을 유지해온 종로통에 영화팬들을 다시 불러모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그동안 명보.중앙 등 강북쪽 극장들이 복합상영관으로 속속 전환했지만 규모.시설면에서 강남쪽 극장과 비교할 수 없었다.

피카디리는 더 나아가 강북쪽 극장으론 드물게 극장과 지하철 출입구를 연결해 관객들의 편의를 높일 계획이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할 점도 있다. 드세지는 영화의 상업화, 극장의 복합화 물결 앞에서 잊기 쉬운 영화의 예술성.작가정신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변변한 시테마테크 하나 없는 한국 영화계 환경에서 극장의 대형화만이 모범답안이 아닐 것이 분명하다.

복합상영관이 득세하면서 규모가 작은 영화는 오히려 극장을 찾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바로 우리 영화계의 현실이다.

늘어날 스크린만큼 극장의 거리 종로에 영화의 그윽한 향기가 살아나길 바라는 것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백면서생의 한가한 소망일까.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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