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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외교에 발 벗고 나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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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저유가 시대의 종언과 함께 지구촌 전체가 심대한 에너지 쇼크에 직면함에 따라 에너지 자원 확보를 둘러싼 각국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각국의 정상들도 자원 외교를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석유 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지난 9월과 10월 노무현 대통령의 카자흐스탄.러시아.인도.베트남 순방도 사실은 이러한 자원 외교의 일환이었다. 이번 순방은 에너지 자원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그 성과 또한 결코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환영할 만한 일은 노 대통령이 석유가스 자원 확보를 통해 경제안정 기반을 공고히 다지겠다고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다는 점이다. 석유.가스 자원은 대규모 투자와 함께 석유 메이저들, 그리고 각국의 전략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분야라 사실 정상외교의 지원이 결정적인 힘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이웃 중국과 일본도 자원외교 활성화를 위해 정상들의 잦은 출장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이번 순방을 통해 그동안 개별기업차원에서 공을 들여왔으나 확답을 얻지 못했던 전략적 거점 육성 대상인 카스피해 지역의 유망성이 높은 광구를 입찰 과정 없이 공여받을 수 있었다. 카자흐스탄 광구는 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방한한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에게 요청한 것으로 한국석유공사의 기술진이 파견돼 5개월간 마함벳 지역에 대한 기술평가를 한 끝에 확보한 광구였다.

한국은 또한 이번 기회를 활용해 러시아 석유산업 국유화과정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러시아 국영석유 회사인 로스네프트(Rosneft)사와 석유공사가 전략적 제휴를 해 사할린의 베닌스크 광구와 서캄차카 대륙붕의 상당지분을 공동 탐사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는 우리나라 에너지 자원의 중동의존도를 경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한국이 지리적으로 동북아 지역에 위치한 러시아의 초대형 가스전과 유전의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됐다는 것은 향후 자원외교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이는 다시 말해 한국도 일본과 중국이 동시베리아 파이프라인 건설에 수십억달러씩 베팅함으로써 러시아산 석유류를 확보하고자 경쟁하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밀리지 않는 전략적 입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리고 이는 동북아 시대의 경제적 주도권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고속 성장을 한 국가다. 그리고 이는 전략적 에너지 자원이 사실상 전무한 가운데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국제 고유가 시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자원과 에너지 문제에 대해 언제까지 단기간의 단순한 전략만으로 대처해갈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 한국은 이번 고유가 시대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보고 국내 에너지 산업 및 발전전략을 연동하는 새로운 어젠다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은 한국이 산유국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영토 내에서 석유를 생산해낼 수 없다 해서 에너지 강국이 될 수 없고 산유국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이미 한국석유공사에 의해 동해-1 가스전의 가스 생산, 베트남 15-1광구의 석유생산, 베트남 11-2 가스전의 개발 착수, 리비아 엘리펀트 유전의 석유 생산 등을 이룩한 산유국이다. 분명 우리 영토 내에서는 아니지만 한국도 자주개발의 역사를 서서히 실현해 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국민 모두가 고유가 시대에 자원 빈국의 수모를 더 이상 겪지 않으려면 자원 외교에 대한 이해와 지원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억수 한국석유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