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마지막 '맞춤 축구화' 장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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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축구화 신는다고 공 잘 차는 게 절대 아닙니다. 자기 발에 맞고 편한 게 최고죠."

서울 동대문운동장 근처에서 '신창스포츠'라는 축구화 맞춤.수선 가게를 운영하는 김봉학(43)씨. 그는 우리나라에 마지막 남은 수제(手製) 축구화 제조 장인(匠人)이다. 가죽을 자르고, 자른 가죽을 재봉틀로 연결하고, 밑창을 대 완제품을 만드는 일을 혼자서 다 해낸다. 축구화 하나를 만드는 데 4시간 남짓 걸리며, 한 달에 150켤레 정도 만들어 켤레당 7만원에 판다.

28년째 축구화 제조.수리 일을 하고 있는 김씨는 고객의 발 모양에 맞는 맞춤형 축구화를 만들어 준다. 발가락이 길거나, 발등이 지나치게 넓어서 기존 축구화가 불편한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된다. 많이 써서 빨리 닳는 부위에는 더 질긴 가죽을 대 주거나 가죽에 특수 처리를 해 주기도 한다. 1970년대 대표팀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렸던 '꺽다리' 김재한씨도 김씨의 단골 손님이다.

경기도 광주의 한 농가에서 3남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김씨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대구에 가서 운동화 제조 공장에 들어갔다. 타고난 성실함을 바탕으로 축구화와 육상화 밑창 만드는 일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88년 독립한 김씨는 발 냄새와 흙먼지가 진동하는 축구화를 정성껏 수리하면서 자신만의 축구화 제조 노하우를 터득해 나갔다. 마침내 93년 돌아가신 아버지 김용산씨의 이름을 따 뫼 산(山)자 모양의 디자인으로 축구화를 생산했다. 가죽과 각종 화학약품 냄새가 빠지지 않던 지하실에서 일하다 지금은 2층으로 옮겼고, 공기 흡입기도 설치했다.

김씨는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성곤(11)군이 가업을 이어주길 바란다. 성곤이는 아기 때부터 심장판막증에다 뇌성마비까지 겹쳐 무척 고생했다. 고생해서 번 돈이 대부분 병원비로 들어갔지만 다행히 지금은 정상에 가깝게 회복됐다.

기계가 사람의 손을 대신하는 대량생산의 시대지만 김씨에게는 욕심이 있다. "프리킥이나 페널티킥 전문 축구화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디자인이야 대형 메이커에 뒤지겠지만 기능에서는 절대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글.사진=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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