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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왈의 무대는 아름다워] 10년 외길 음악 공연기획사에 '박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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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번 주 공연 캘린더를 살펴보다 어느 기획사의 기념 공연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21일 열리는 막심 벤게로프 바이올린 리사이틀이다.

세계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보는 설렘도 크지만, 나는 공연 직전 열리는 조촐한 자축행사를 더 기대하고 있다. 공연을 주최한 크레디아 창립 열 돌 잔치다. 크레디아는 클래식 전문기획사로 명성이 높은 곳이다.

10년이라! 쏜살같이 달아나는 게 세월이라지만 '외길 10년'은 만만한 게 아니다. 빈약한 자본력과 요동치는 시장 환경 탓에 흥망성쇠를 가늠하기 힘든 공연계에서 한 우물을 파 성공한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다. 이 중심에 정재옥(43) 사장이 있다.

정씨는 1994년 모 신문사 문화사업팀에서 일하다 독립해 크레디아를 차렸다. 직원 한 명으로 출발, 이젠 20여 명의 생계를 책임진 중견 기업으로 키웠다. 기획공연 및 호암아트홀 운영으로 거둬들이는 크레디아의 연 매출액은 35억 원에 이른다. 100여 편의 공연을 부지런히 소개해 얻은 결과다.

외형으로 치면 크레디아는 음악계 '큰 손'이다. 국내 업체 가운데 경쟁 상대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정작 큰 손 크레디아 이미지는 이런 양적인 겉치레에 있는 게 아니다. 10년 동안 '음악 기획 문화'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더욱 값지다.

요즘은 장족의 발전을 거듭했지만 과거 독자적인 기획력을 갖춘 기획사는 드물었다. 예술가의 생각을 그저 심부름 해주는 '대행업' 수준이 태반이었다. 이 결과, 소비자인 관객과 만나는 방법이 미흡해 음악의 저변을 넓히는 데 한계가 있었다.

크레디아는 이런 척박한 현실에서 기획의 독자성을 찾으려고 노력한 끝에 신뢰성 높은 '클래식 브랜드'로 성장했다. 매니어층도 형성돼 온라인 회원이 4만명, 커뮤니티 '클럽발코니' 평생 회원이 1000 명에 이른다.

관객 주권이 부각되는 때 공연계에 크레디아 같은 뚝심 있는 기획사는 많을수록 좋다. 축구 경기로 치면 기획사는 (관객을 향해) 공격의 물꼬를 뜨는 미드필더와 같다.

정재왈 공연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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