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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특별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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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기술이 바뀌면 시대와 사회가 변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술결정론' 의 허구다.

신기술이나 새 발명품이 나와도 그것을 옛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 한 진정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의 지식 정보기술이나 21세기의 ENR(유전자 공학.나노테크놀로지.로봇기술)도 예외일 수는 없다.

자동차가 처음 발명됐을 때 사람들은 '말(馬) 없는 마차' 라고 불렀고 그 모양도 마차를 그대로 본뜬 것이었다.

화석 에너지인 엔진의 힘을 생물 에너지로 환산해 마력(馬力)이라고 했다. 심지어 자동차가 마차보다도 빨리 달리면 벌금을 무는 적기법(赤旗法)을 만들기도 했다.

전화가 나타났을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전화 줄에 짚신 같은 물건이나 봇짐을 매다는 경우가 많았다. 소리가 가면 당연히 물건도 가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약삭빠른 일본사람들도 처음 전화를 달 때 후쿠오카(福岡)지방의 호열자로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전화를 통해 전염병이 옮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른 예가 필요없다. 한국에서 처음 신문이 발행됐을 때 서재필 박사는 거리에 나와서 "한장에 한푼인 신문이오! 읽고 나면 창호지도 되고 밥상 덮는 상보도 되는 신문이오!" 라고 외쳐야만 했다.

신문이라고 하면 뉴스보다도 신문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던 탓이다.

영화는 움직이는 사진이고 텔레비전은 안방 극장이다. TV의 내용을 프로그램이라고 하고, 인터넷의 웹사이트를 홈페이지라고 부르는 것도 종이에 인쇄하던 시절의 옛 개념에서 나온 말이다.

정보라는 개념 자체가 그렇다. 같은 시대, 같은 정부기구의 명칭 인데도 국가정보원의 정보와 정보통신부의 정보는 그 개념이 서로 다르다.

개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정보에 대한 개념도 마찬가지다.

"정보가 샌다" "정보를 흘린다" 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보를 물과 같은 액체로 생각한 것이다. 물꼬를 자기 논에다 대던 농경시대적 개념이다.

그러나 "정보를 캔다" "정보를 묻는다" 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보를 무슨 석탄이나 노다지 같은 것으로 알고 있는 산업시대인에 속한다.

그런가 하면 "정보가 환하다" "정보에 어둡다" 고 말하는 사람은 정보는 액체도 고체도 아닌 빛이다.

만화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전구를 그려놓는 에디슨시대의 유물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지식정보의 새로운 기술을 옛 패러다임으로 읽고 있다는 증거다.

정보기술(IT)을 새 패러다임으로 비유한다면 그것은 액체도 고체도 아닌 '공기' 라고 말할 수 있다.

공유는 해도 독점할 수는 없는 것이 공기이며 지식이다. 사용을 해도 없어지지 않고 순환하는 것이 또한 공기의 속성이며 정보의 특성이다.

그러므로 '가치' 는 있어도 '가격' 은 없는 것이 공기이며 지식정보다.

그러고 보면 인터넷을 돈만 버는 노다지 비즈니스로 이용하려는 발상 자체가 인터넷의 비본질적 사용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서 발생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e-비즈니스' 나 IT관련 산업의 거품이다.

벤처기업의 주가를 폭등시킨 것도, 폭락시킨 것도 모두가 산업자본주의적 옛 패러다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동차가 마차의 개념에서 벗어나는 데 삼십년 이상 걸린 것처럼 세로운 세기를 맞이하고 오늘에도 지식정보기술은 농경시대나 산업시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경제의 그 거품상은 허망한 것이면서도 묻은 때를 깨끗이 씻어주는 빨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는 전화위복일 수도 있다.

나침반을 처음 대한 뱃사공들은 진로만이 아니라 폭풍까지 막아주는 힘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했다. 그래서 풍랑 속을 항해하다 난파당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1백년 후에 오늘의 역사를 읽는 사람도 IT를 과신한 사람들이 어떻게 인터넷의 바다에서 침몰했는지를 읽게 될 것이다.

그래서 거품의 허망한 꿈에서 깨어난 사람들은 이제서야 인터넷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잘못 인식된 '정보 자본주의' 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인터넷의 기능은 무상성이라는 것. 정보지식의 본질은 돈을 내지 않고 교환하는 것이며 그 보상은 물질이 아니라 심리적 보람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인터넷은 봉사와 협력이라는 원초적인 인간의 욕망에 근거를 둔 것이며 화폐의 유통과는 정 반대의 것이라는 것. 그리고 해킹은 오히려 인터넷의 무방비적 개방성을 드러내 인터넷을 폐쇄회로로 만들려고 하는 비정보화 경향에 대한 경고일 수도 있다는 것.

정보는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며, 인터넷 문화의 특성은 영리적인 기업가보다는 무상의 봉사자에 의해 유지되고 창조되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컴퓨터 네트워크의 출현은 국가나 관료조직에 의해 통제되고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인 생태계와 같이 자생적이고 자기조직화, 그리고 면역체를 지닌 생체와도 같은 것이라는 것" 을 깨닫는 데서 21세기를 맞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지식정보시대의 모델로 삼아온 미국의 빌 게이츠 신화도 21세기에는 핀란드의 리누스의 모델로 바뀌게 될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리누스 토발즈는 세계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MS윈도에 맞서는 운영체계(OS)를 만들고서도, 그리고 또 그것이 차세대 무선 인터넷과 모바일 컴퓨터에 적합한 것이었으면서도 인터넷상에 무상으로 공개해 버렸다.

20대의 이 핀란드 대학생은 열아홉살에 단돈 1천5백달러로 시작해 세계 제일의 정보제국을 만들어낸 빌 게이츠와는 전연 다른 북유럽 버전의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 탄생한 오픈 아키텍처인 리눅스는 누구나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고 개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윈도와 차이를 갖는다. 그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 패러다임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골리앗과 같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리누스는 애숭이 다윗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어느 비평가의 말대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입장에서 보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한 경쟁상대라면 두려울 것이 없겠지만 이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리누스 같은 상대는 잡을 샅바가 없는 무서운 경쟁자로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리누스의 그 동기는 돈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사용하고 참여하는 기쁨에 있다.

정보의 특성을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라 '보람' '존경' '감사' , 그리고 '감동' 과 같은 삶의 즐거움을 획득하는 무상의 행위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리누스 모델은 단순한 자선적인 도덕심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 발신권과 수신권을 동시에 행사하는 상호 의존관계의 구조를 만들어내는 정보기술의 산물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이러한 상생의 정신은 약육강식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꽃과 나비의 관계처럼 식물과 동물까지도 서로 어울려 사는 반 다위니즘적 사상으로까지 확대된다.

리누스의 모델은 한 개인의 심성이나 아이디어가 아니라 독점금지법의 분쟁을 일으키는 미국 산업자본주의 모델과는 또 다른 미래의 정보자본주의를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포스트 PC의 노키아 같은 최첨단 휴대전화 회사를 키운 핀란드의 기업접근을 암시한다. 이렇게 새 문명의 탄생은 파워의 중심부가 아니라 그 주변부에서 태어난다.

주식시장의 주가로 IT를 평가하고 벤처기업의 수익성으로만 정보사회를 평가하려는 세상 자체가 잘못된 정보관이라는 데서부터 한국의 정보화는 다시 출발돼야 한다.

정보 초고속망만 깔았다고 해서, 인터넷 인구가 1천만명을 넘었다고 해서 지식정보사회가 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식정보의 신개념은 독점보다는 나눔이, 경쟁보다는 협력이, 그리고 폐쇄보다는 개방이 우선해야 한다는 데서 생겨난다.

그리고 시장의 가격이 아니라 마음의 가치를 먼저 생각하는 시스템의 인식이다.

지금 큰 꿈을 품고 벤처기업에 투자했던 사람들이 추락하는 주가 앞에서 한숨을 쉬고 있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그리고 웹 비즈니스의 벤처는 끝났으며 신경제는 거품이었다고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하지만 인터넷 사회와 그 문명은 이제 겨우 21세기의 첫새벽을 맞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마존닷컴을 인터넷 비즈니스의 모델로 생각하고 그 주가에 일희일비하고 있지만 실상은 물건의 주문방식만 바꾼 기업에 지나지 않는다.

자장면을 전화로 시켜먹었다고 해서 자장면의 맛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며 정보화하는 것도 아니다.

인터넷의 공간으로 들어오면 수직이 수평으로 변하고 폐쇄가 개방으로 바뀌고 집중이 분산으로 그 가치체계가 물구나무 선다.

그것처럼 책의 주문방식을 인터넷상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만들어내는 작가와 독자의 수직개념을 수평으로 바꾸고, 저자.출판사.독자의 벽을 개방적이고 분산적인 콘텐츠로 변화시키는 아마존닷컴이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물질의 가치 시스템 속에서 살아왔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시각 편중의 세계에 길들어져 왔다.

21세기 한국이 풀어야 할 과제는 많지만 그러한 옛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정보의 신기술을 새로운 개념으로 사용하고 발전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한국의 지식 정보화는 바로 이 21세기의 새벽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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