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서울대 못간다고 자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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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즐거워야 할 연말연시는 전 국민적 행사인 대학입시와 겹치면서 매우 긴장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한다.

또 소수의 행운을 잡은 학생과 그 가정 외의 다수는 패배나 불만족의 아픔을 안고 시름에 잠긴다.

게다가 언론을 보면 매일 마치 주식시장을 실황중계하듯 수많은 대학과 학과의 경쟁률과 커트라인을 보도하는 것에 신물이 난다.

*** 투기판 같은 아수라장

게다가 이번에는 재외국민특례입학 부정사건이 터져, 교육이란 이름과는 전혀 무관한 사기꾼들과 명문대 입학이라는 대박을 노리는 투기꾼들이 엮어내는 수라장 같은 꼴들을 보자니 더욱 울화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드디어는 이런 일까지 터졌다. 한 젊은이가 수능시험에서 3백90점이 넘는 고득점을 하고도, 그리고 명문 사립대 인기학과에 특차합격하고도 서울대를 가지 못한 것을 비관해 한 여관방에서 음독자살한 것이다.

'서울대에 못간다고 목숨을 끊다니…' 하며 망연자실해하는 부모의 울부짖음은 동시에 우리 사회의 절망이기도 하다.

자살에까지 이른 이 학생의 심리상태를 한번 더듬어보자. 이 학생은 지난 1997년 과학고 3학년을 다니다 중퇴했다.

추측컨대 내신성적을 염려한 것인데 실제로 지금도 많은 과학고 등 특목고 학생들이 내신관리를 위해 자퇴를 할 것인가의 갈등에 휩싸여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일단 자퇴를 하는 경우에는 대신에 서울대 입학이라는 배수진을 친다는 것이다. 이 학생은 자퇴 후 몇 년 동안 오로지 서울대 입학을 지상목표로 삼아 매진했다.

그러나 운이 따르지 않았는지 계속 실패했고 어느 유수한 사립대학에 전액장학생으로 다니기도 하였지만 서울대 진학의 꿈을 버릴 수 없었다.

이제 4수 끝에 다시 도전했지만 좌절했고 그는 그 막다른 골목에서 끝내 이 세상을 살아갈 의욕을 접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이 학생을 특이한 서울대편집증 환자로 몰아붙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학생은 우리 사회의 왜곡된 가치체계의 희생자다.

사실 이 학생은 서울대를 가서 인생에 큰 덕을 보겠다는 장기적인 생각을 가진 것도 아닐 것이다.

자신이 유서에서 밝혔듯이, 그저 자기의 친구들이 많이 서울대를 다니는데 자신은 최고가 아닌 명문사립대 정도의 배지를 달고서는 도저히 그 열등감을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의 똑똑한 젊은이들은 12년의 교육과정을 통해 이렇게 금메달 제일주의에 중독되도록 키워지고 있다.

바로 우리 기성세대들의 타락한 가치관이 전이돼 이런 안타까운 희생자를 낳는 것이다.

인간은 자긍심을 먹고 사는 존재다. 쉽게 말하면 자기 잘난 맛에 산다는 말이다. 이 자긍심이 가장 피어오르는 때가 바로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은 청소년기다.

그런데 우리의 철저히 서열화한 학벌사회는 이 사회의 모든 청소년들로부터 대학입시를 기점으로 해 극소수의 행운아들을 제외하고는 이 자긍심을 송두리째 압수해 버린다.

자긍심이 강한 자일수록 더욱 열패감에 빠져들고 치유하기 힘든 심리적 상처를 입는다.

많은 경우에는 그 몰수된 자긍심이 곧 그들의 가능성 자체를 봉쇄한다. 한번 기가 꺾인 여린 가지는 다시 피어오르지 못한다.

인간의 심성이란, 특히 여물어가는 청소년기에는 이렇게도 여린 것을, 그 여린 심성에 비수를 꽂는 듯한 아픔과 상처와 소외를 주는 이 서열 의식.

*** 대학선발권 공영화 필요

더 이상 우리의 귀한 젊은이들이 왜곡된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제도의 희생양이 돼서는 안된다. 우리는 입시의 중압감으로 일년에 1백50여명씩 죽어나가는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들을 보면서도 이미 분개할 감성마저 잃은 듯하다.

그러나 이제는 시급히 나서야 한다. 경제에 위기가 닥치자 노사정위원회라는 거국적 조직을 만든 것처럼, 이제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등학교와 대학과 학부모.시민단체.정부 등을 아우르는 거국적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 조직의 핵심적 과제는 모든 문제의 근원인 우리 사회의 서열화한 학벌체제를 완화.해체하는 데 모아져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대학의 선발권을 공영화하는 특별 조치라도 마다할 수 없다. 이 길만이 위의 젊은이 같은 희생자를 다시 내지 않는 근원적인 해결책이다.

김동훈 (국민대 교수.법학, '학벌 없는 사회' 를 위한 모임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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