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도요타 사태를 보는 상반된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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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도요타자동차가 그릇 이상의 일을 벌였다.”

일본에서 ‘컨설팅의 신(神)’으로 불리는 하세가와 가즈히로(長谷川和廣·70·사진) 회사력연구소(會社力研究所) 대표의 말이다. 능력을 벗어난 일을 하다 사고를 냈다는 얘기다. 도요타의 강점인 품질관리의 실패를 가리킨다.

40여 년간 글로벌 기업을 컨설팅해 온 그의 진단은 명쾌하다. 그는 일본에서 적자 회사를 흑자로 돌리는 ‘문제 기업 컨설팅’의 1인자다. 그에게 도요타의 리콜 사태를 계기로 도마에 오른 일본 ‘품질 신화’의 위기와 미래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16일 도쿄 시내 그의 사무실에서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도요타 리콜 사태의 원인은 무엇인가.

“사업 규모가 ‘그릇’을 초과했다. 도요타의 강점은 품질관리였다. 그러나 일본 밖으로 나가면 일본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못 하게 된다. 도요타가 의도했던 대로 품질관리가 되질 않는다. 해외 공장에서는 도요타 방식의 관리 방식이 도달하지 않았다. 글로벌화를 너무 서둘렀다. 회사가 통제 범위 이상으로 커졌다. 자동차는 현재 개발하고 있는 기술이 5년 후 사용된다. 부품업체들은 이미 5년 전부터 엄청나게 부품 가격 인하 압력을 받았다.”

-어느 부분에서 품질관리에 구멍이 뚫렸을까.

“일본의 품질관리는 한국·중국 기업과는 개념이 크게 달랐다. 일본은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한 품질관리였다. 한국과 중국은 대량 생산을 위한 품질관리였다. 도요타는 글로벌 체제에서도 품질 통제가 가능하다고 봤다. 기술력에 자신감이 있어 도요타 표준을 사용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과 중국에서는 이제 품질관리의 기준이 좋은 물건을 만드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일본이 두려워하는 부분이다.”

-전자제어 시스템까지 신뢰성을 의심받고 있다.

“앞으로 엄청난 법적 분쟁거리가 될 거다. 차량 설계상으론 문제가 없을 것이다. 도요타도 제품에 문제가 없다고 끝까지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체제가 되면서 부품에 결함이 생기거나, 어디에선가 문제가 발생했을 수 있다. 어느 회사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어떤 제품도 완벽한 것은 없다. 미국의 과잉 반응도 사태를 키우고 있다. 있어선 안 되지만 제품이란 완벽할 수 없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일본의 전자 메이커도 활력이 크게 떨어졌다.

“상상력의 결여다. 지금부터의 경쟁은 아날로그에서 결판이 난다. 디지털은 웬만큼 한·중·일의 수준이 같아졌다. 따라서 앞으로는 정보기술(IT) 기업이라고 해도 디지털 기술보다는 창의력이 생존의 관건이다. 소니가 삼성전자에 추월당한 것도 마찬가지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창의력과 열정의 차이다. 기업가 정신이 약해졌다.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이 오만과 방심을 키웠다. 나는 요즘 대학 강단에 설 때도 최종적으로 아날로그 부분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의 제조업은 활력을 회복할 수 있나.

“도요타 문제로 한국이나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어부지리를 얻는다는 안이한 생각으로는 안 된다. 기술 격차가 많이 좁혀졌지만, 그래도 일본의 기술력은 경쟁국들과는 깊이와 폭에서 차원이 다르다. 더구나 글로벌화에 따라 노동 비용의 차이가 없어지고 있다. 결국 생산 비용이 같아지면 경쟁의 열쇠는 다시 기술력이 된다. 이게 일본이 생존할 수 있는 생명선이다. 여기에 일본은 희망을 갖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일본은 정치가 나쁘니까, 이렇게 되고 있다. 사회의 긴장감이 풀린 것이다. 한국은 절대로 일본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요즘도 한 달의 3분의 2를 세계 시장을 돌아다녀 보면 일본인의 근면성이 과거보다 크게 떨어졌다는 것을 절감한다. 너무 윤택해져 나태해졌다. 한국 기업도 현실 안주는 금물이다. 10년 후 생존을 위해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이달 초 불가리아의 소피아 모터쇼에서 도요타자동차 직원이 차량 앞면의 도요타 엠블럼을 닦고 있다. 걸레질로 차량의 먼지는 닦이겠지만 도요타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지는 미지수다. 미국과 일본의 도요타 전문가 두 명도 엇갈린 전망을 내놨다. [소피아 로이터=연합뉴스]

도쿄=김동호 특파원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대량 리콜 사태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급기야 도요타는 다음 주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리콜 사태를 해명해야 한다. 그동안 도요타의 품질 신화를 높게 평가해오던 전문가들조차 도요타생산방식(TPS)과 일본식 경영의 한계를 지적하고 나서는 형국이다.

그러나 TPS에 관한 미국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는 제프리 라이커(60·사진) 미국 미시간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리콜 이후 미국 언론에서 제기하는 도요타 품질에 대한 비판은 진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며 “도요타는 특유의 ‘도요티즘(도요타 정신)’을 통해 이번 리콜을 초래한 문제점을 찾아 재빨리 개선하면서 더 강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인터뷰는 두 차례 e-메일 교환을 통해 이뤄졌다.

-대량 리콜 파문이 아직도 확산 중이다. 진짜 도요타 차의 품질과 안전성에 문제가 생겼다고 보나.

“고객들의 불만에 도요타답지 않게 늑장 대처해 대량 리콜을 자초한 면이 있다. 그렇지만 도요타가 다른 경쟁 차보다 안전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지난해 가을 포드가 운전제어장치 이상으로 800만 대를 리콜했고 해당 차량에서 550건이 넘는 화재 사건이 일어났지만 미국 언론은 이를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이런 것과 비교해보면 최근 도요타 리콜에 대한 비판 수위는 정도를 넘어선 것 같다.”

-이번 리콜은 한 차례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행돼 800만 대를 넘어섰다. 품질이 나빠진 것 아닌가.

“리콜을 했다고 무조건 품질이 나빠졌다고 해석할 수 없다. 도요타는 최근 각종 품질지수에서 타사를 압도했다. 지난해 자동차 전문 조사업체인 JD파워의 초기품질지수에서 도요타는 20개 부문 가운데 10개나 1위를 차지했다. 제조업체라면 리콜은 피할 수 없는 경영 행위다.”

-리콜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원인과 추측이 나오는데.

“밝혀진 리콜 사유는 바닥 고무매트, 가속 페달, 브레이크 시스템의 소프트웨어 결함 등 세 가지다. 매트의 경우 바닥에 고정되지 않았을 때 가속페달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도요타가 아닌 타사 차량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나머지 두 결함은 설계상 문제다. 도요타가 부품업체에 발주한 설계 승인은 이미 7년 전에 이뤄졌다. 7년간 두 개의 설계 실수를 했다면 품질관리상 그리 나쁜 수치가 아니다.”

-그렇다면 도요타는 무엇이 문제인가.

“도요타가 소비자의 불만에 좀 더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건 도요타가 강조하는 문제점을 스스로 찾아 가이젠(改善·개선)하는 TPS에도 상반된다. TPS에서 가장 큰 죄악은 바로 문제점을 숨기는 것이다. 리콜 이전에 도요타의 강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결함 빈도가 적어도 안전과 관련된 사고로 이어진다면 소비자는 불안할 수밖에 없는데.

“자동차는 지극히 복잡한 기계라 실제 사용상 일어날 오류를 예측하기도, 문제점을 추적하기도 어렵다. 어떤 자동차회사도 완벽할 수 없다. 문제는 언론의 도요타 비판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포드의 중형차인 퓨전 하이브리드 역시 프리우스와 똑같은 브레이크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지만, 포드는 리콜을 하지 않았고 언론도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협력업체의 납품 단가를 무리하게 깎아 품질이 나빠졌다는 시각도 있는데.

“도요타는 경쟁력 제고를 위해 공격적으로 비용 절감을 해왔다. 한국의 현대·기아차가 해온 것과 같은 방식이다. 도요타는 내부적으로 생산 효율화와 품질 향상을 꾀하면서 협력업체에 같은 수준을 요구했을 뿐이다. 납품가격 인하와 리콜은 별개의 문제다.”

-리콜 이후 도요타에 대한 전망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더 강해지는 게 TPS의 강점이다.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도요티즘의 원론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종찬 기자

하세가와 가즈히로는 다국적 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많다. 킴벌리·제너럴푸드 등에선 프로덕트 매니지먼트를, 켈로그·바이엘 재팬 등에선 사장을 맡았다. 그동안 글로벌 기업들을 포함해 직간접적으로 모두 2400개사를 컨설팅했다. 현재 연간 매출 100억~2000억 엔 규모의 회사 7~8곳을 컨설팅하고 있다. 그가 지난해 7월 출간한 『사장의 노트』는 6개월 만에 17만 부가 팔렸다.

제프리 라이커는 20년간의 도요타 연구를 집대성해 2004년 『도요타 방식(The Toyota Way)』을 펴냈다. 40여 명의 도요타 고위 관리자·임원을 120시간 이상 인터뷰해 도요타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1997년에는 컨설팅 회사인 ‘옵티프라이즈’를 설립해 크라이슬러, 포츠머스 미 해군 조선소 등 미국 주요 기업·기관에 도요타 생산방식을 접목하는 컨설팅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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