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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새해가 오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2001년, 21세기의 첫날이다. 아서 클라크의 소설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영화화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원시인의 몽둥이가 하늘로 날아올라 목성 탐사 우주왕복선으로 바뀌는 영화의 도입부. 인격을 가진 컴퓨터가 등장하고 우주를 관장하는 초지성이 현현하는 시대. 클라크가 상상하고 경고한 미래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대신, 지난 세기의 그림자가 세계를 짓누르고 있다. 영국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해설한 자신의 역사서를 '극단의 시대' 로 이름짓고 있다.

그 첫머리에 나오는 저명인사들의 평가는 어둡다.

"서양사에서 가장 끔찍한 세기" (영국 철학자 아이제이어 벌린), "학살과 전쟁의 세기" (프랑스 생태학자 르네 뒤몽), "인류사에서 가장 폭력적인 세기" (노벨상 수상 영국 작가 윌리엄 골딩). 노벨상 수상 과학자들만이 긍정적이다.

"더 나은 것들을 위한 혁명들이 일어났고 제4신분이 부상했으며 여성들이 수세기의 억압에서 벗어났다" (이탈리아 리타 몬탈치니), "가장 근본적인 특징은 과학의 진보다. 그 진보는 실로 엄청났다" (스페인 세베로 오초아).

1994년에 출간된 이 책이 제3세계 최대 성공담으로 한국을 꼽고 있다는 것은 금석지감을 느끼게 한다.

이제 시작되는 21세기의 사회는 어떤 모습을 띨 것인가. "찬란하고, 환희에 차 있으며, 야만스럽고, 행복하고, 기상천외하며, 기괴하고, 도저히 살 수 없고, 인간을 해방시키며, 끔찍하고, 종교적이면서도 종교중립적인 사회. " 프랑스의 지성 자크 아탈리가 '21세기 사전' 에서 예상한 모습이다.

아탈리가 말했듯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 손을 움직이는 것이 따뜻한 마음이기를 바라면서 나해철 시인의 '새해가 오면' 을 읽는다.

"새해가 오면/배꼽을 드러내놓고 뛰노는 아이들에게/부끄럽지 않게 해주소서…/건강한 가슴이 상한 것들을 이길 수 있게 해주시고/때때로 꽃이 되게 해주소서…/이땅의 사람들이 서로 섞이어 하나 되어/제 살이 아프므로 누구건 내려치지 않게 해주소서. /수풀과 잡목림, 깨끗한 새벽과 바람처럼/새해가 오면 끝까지/부끄럽지 않게 해주소서. /아이들과 꽃, 구름과 별/풀과 나무, 착한 짐승들에게. "

조현욱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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