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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새해특집] 김정일 위원장 서울 답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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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새해 남북관계의 화두는 단연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이다.지난해 화해·협력의 물결을 가져온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평양방문에 이은 金위원장의 답방이 평화정착의 전기를 마련할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답방여건과 시기=답방이 金대통령의 언명대로 올 봄에 실현될지가 미지수다.金위원장이 답방에서 얻으려는 열매가 여러 여건상 여의치 않은 쪽으로 흐르고 있다.

우리 경제사정의 악화가 대북지원의 발목을 잡고 북측의 일방통행식 태도에 대한 비판적 여론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야당의 대북정책 기조는 이미 뚜렷한 보수 성향으로 돌아섰다.

정치권 판도가 복잡하게 얽힐 때 金위원장의 답방은 지체될 수 있다.

특히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등 일부 지도층의 반대 캠페인이 지속되고 우리쪽 경제여건이 악화되는 등 남북관계의 외형적 환경이 부정적으로 조성되면 방문이 지연되거나 제주도 등으로 방문지가 변경될 수 있다.

그러나 남북의 양 지도자가 중대 현안타결을 내걸고,시기는 늦출지언정 다소 무리해서라도 답방행사를 감행할 가능성은 커 보인다.

답방의 시기 ·분위기 ·열매수확의 사전조율을 위해 김영남(金永南)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서울을 먼저 찾게 될 것이다.

◇평화정착과 다자회담=金대통령은 金위원장을 만나 6.15공동선언에서 제대로 담지 못한 평화정착안을 토의하려 한다.단계별 평화정착 방안을 구체화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해도 큰 틀을 만들어내려 할 것이다.정상회담에 앞서 갖게 될 국방장관회담에서 군사핫라인 설치,군사훈련 및 대규모 부대이동의 상호통보,군사참관단 교환 등이 논의될 수도 있다.

평화정착은 지난해 만들어낸 경협의 제도적·법적 장치나 경의선 복원 프로그램의 실행을 위해서라도 필요해진다. 특히 북측이 희망하고 있는 50만KW의 전력지원과 앞으로 논의될 사회간접자본(SOC)건설은 평화정착과 연동되지 않을 수 없다.

金대통령은 金위원장에게 남북한이 평화체제에 합의하고 이를 미·중이 보장하는 ‘2+2’형태의 4자회담을 강조하고 4자 정상회담을 타진할 것같다.

이에 비해 金위원장은 지난해 10.12북미공동성명에 따라 북 ·미간의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평화보장체계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할 것같다.

특히 북한은 미국이 요구하는 미사일문제 해결과 평화(잠정)협정을 묶어 일괄타결식으로 몰고갈 가능성이 있다.미국이 이를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려운만큼 남북한과 미국이 함께 논의하는 3자회담이 부상할 수 있다.

남북한은 올해 주변국가들과 정상회담을 적극 추진할 것이다.金대통령은 오는 봄 워싱턴에서 부시대통령을 만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지지를 요청할 생각이다.

金위원장은 4월에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날 계획이고 서울방문 전에 장쩌민(江澤民)중국주석을 평양에 초청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합제 ·연방제 사이에서=金위원장은 6.15선언에 담긴 연합제 ·연방제의 공통점을 살리는 통일방안을 만들어 실천에 옮기면 평화정착도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할 것같다.

그는 남북당국이 현재의 정치 ·외교 ·군사권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위에 ‘민족통일기구’를 만드는 ‘낮은 단계 연방제’를 되풀이할 것이다.

‘낮은 단계’론의 함의를 둘러싸고 서울에서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낮은 단계’는 ‘높은 단계’를 상정한 과도기 방안일뿐 연방제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과, 북측이 기존 연방제를 포기하기 어려운 사정에서 연합제에 근접해온 것이 ‘낮은 단계’론이라는 해석이 상충될 수 있다.

아무튼 金위원장은 한국민의 반북의식을 약화시키기 위해 민족대단결을 거듭 주장할 것이고 서울각계지도층과의 접촉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전직 대통령 ·정당지도자들을 비롯한 지도층 인사들과 만나 지난해 남측언론사 사장단과의 만남과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북측도 남북관계 유지 필요=金대통령과 金위원장은 다소 논란이 있더라도 정상회담에서 서로 거둘 수 있는 수확에 더 관심을 쏟을 것이다.

金위원장은 식량 ·전력 도입과 개성공단·경의선 등을 통한 경협확대라는 열매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는 또 북미 ·북일관계 개선,아태지역 ·유럽지역국가들과의 관계정상화를 추진하는데 있어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주는 남북관계에 등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주적(主敵)론’을 문제삼는 등 사안별로 때때로 강경책을 구사하더라도 ‘통미봉남(通美封南)’의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같다.

북측은 부시행정부와의 미사일해법이 난관에 부딪칠 때를 대비해 남북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북미관계가 부시행정부하에서도 94년 10월 제네바합의,지난해 10.12공동성명의 기조를 유지할 것이며 하반기쯤 이르면 테러지원국 해제, 대표부 설치 등의 관계개선 움직임이 가시화할 것이다.

다만 부시행정부의 대북 신중론을 감안해볼 때 양국관계의 획기적 진전이나 수교까지 이뤄질지는 다소 불투명하다.

◇정상회담 정례화=金대통령은 평화정착 외에도 金위원장에게 몇가지 열매를 더 요구할 것이다. 92년 남북기본합의서 틀에 가까운 다채널 당국회담의 정례화, 실익있는 경협기반 마련,그리고 이산가족문제의 제도화(면회소설치,서신왕래등) 등이 그 예에 속한다. 金대통령은 또 남북관계의 질적 전환을 위해 정상회담 정례화의 필요성을 역설할 것이다.

올해는 한반도에서 냉전구조가 무너지고 상생(相生)의 새 협력틀이 자리잡는지를 가늠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유영구 북한문제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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