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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온세상' 아직 먼 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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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21세기가 시작되는 새해,지구촌의 가장 큰 화두(話頭)중의 하나가 ‘정보 격차(Digital Divide)’의 해소다.

세계 각국이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밀려들고 있는 디지털 혁명의 물결을 기회로 잡아 지식정보강국을 실현하겠다는 국가시책가운데 정보격차해소를 핵심적 위치에 놓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다.정보격차에 따른 세대 ·지역 ·빈부간 갈등을 푸는 게 이 시대의 절실한 과제라는 공통된 인식에서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정보 소외계층이 늘어 날수록 그만큼 국가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얘기는 이미 구문일 정도로 심각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국내 실태와 함께 새해들어 나라안팎에서 펼쳐질 정보격차해소대책들을 살펴본다.

서울 강북 달동네 A초등학교.교사가 학생들의 인터넷 활용능력을 알아보려고 최근 e-메일 보내기 방학숙제를 냈다.그러나 반 아이 30여명 중 e-메일을 보낸 학생은 불과 5명 뿐이었다.

강남 압구정동 아파트 단지에 사는 B초등학교 학생들은 요즘 친구들끼리 e-메일 카드를 보내거나 온라인 채팅을 하느라 난리다.대부분의 가정에 초고속 인터넷PC가 있어 온라인으로 서로 안부를 묻거나 학습 자료를 교환하는 것이다.

남쪽으론 마라도,동쪽으론 독도까지 인터넷이 보급돼 우리 나라가 일본을 앞서 정보화 강국으로 발돋움했다고들 한다.서울에서 거제까지 이어진 정보고속도로나 4백만명에 달하는 초고속 인터넷 인구를 보면 어김없는 정보화 일등국의 모습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국민의 기본권인 정보 이용에서 소외돼 불평등하게 생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개인 능력마저 제대로 펼칠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가 예상외로 넓게 드리워져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명(明)과 암(暗)이 뚜렷한 실정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윤창번 원장은“디지털 사회에서 정보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나타나는 불평등한 기회는 개인의 성공이나 기업의 성패,국가의 성장 등의 경쟁력 차이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송관호 한국인터넷정보센터 사무총장은““심지어 서울 강남 ·북간에도 차이가 있는 등 국내 정보 격차는 점점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다”며“컴퓨터 ·인터넷 보급률이 연령·교육·소득별로도 큰 차이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국전산원에 따르면 초고속 인터넷의 경우 서울은 인구 대비 가입자가 22%인데 반해 충남은 6%에 그친다.

서울 강남 ·북을 비교해도 서울 압구정동 등 강남 아파트 단지에는 한국통신 ·하나로통신 ·두루넷 ·드림라인 등 초고속망 업체들이 앞다퉈 4중으로 광통신망을 깔았다.반면 강북의 단독주택이나 변두리는 철저히 외면되고 있다.

세대나 직업간의 정보 격차는 더 하다.인터넷에 접근해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수준인 정보이용 지수에서 10대를 1백으로 볼 때 50대 이상은 8.6으로 뚝 떨어진다. 직업별로도 대학생 1백을 기준으로 농 ·어업과 주부는 각각 5에 머문다.

곽치영 의원(민주당)은 “국내 인터넷 이용률이 37%에 달한다고 하지만,이는 결국 국민 중 1천9백만명 이상이 정보화 취역집단이란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곽수일 교수(정보통신정책심의회 위원장)는 “인터넷 이용자는 특히 대부분 30대 미만이라 국가 ·기업 ·가정을 이끄는 40-50대가 외면당하고 있고,전통적인 제조업이나 1차 산업도 인터넷 소외지역”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복지정보통신협회 최영식 교육주간은“최근 정부나 민간에서 노인 정보화에 관심을 갖고 있으나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인터넷 등 정보화는 노인이나 장애인에게 더 필요한 도구”라고 강조했다.

정보 격차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비해 점점 뒤지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인터넷 없인 첨단 정보 습득이 어렵고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무역은 더욱 상상할 수 없다.

숙명여대의 유병선 교수는 “초고속 인터넷 보급이 일본보다 잘 돼 있다고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섰다며 자만하다간 곧 모래성처럼 무너진다”며 “정부나 제조업의 디지털화 등 경제를 이끄는 부문의 정보화가 미약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통신업계도 이런 심각한 상황을 파악하고 올해부터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복지정보 사업을 시작한다.우선 올 한해 7백30억원을 들여 저소득층 자녀에게 무료로 컴퓨터를 나눠주거나 인터넷 교육을 실시할 방침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식정보화의 물결은 부를 증식시켜 생활을 윤택하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적응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간에 빈부 격차를 더욱 크게 할 수도 있다”며“앞으로 정보 격차 해소에 집중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안병엽 정통부장관은 “전국의 초등학교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기본적으로 깔아 주고 누구나 부담없이 인터넷을 쓸 수 있도록 통신망·콘텐츠 이용료를 낮추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정보화에 소외된 중소기업에 대한 대책도 나오고 있다.

남궁석 의원(민주당)은 “‘브레이브IT 씨티’를 제안하면서 분당-용인-이천과 송도-수원-용인-이천 등으로 이어지는 지식산업 복합단지를 제안했다.

국제적인 움직임도 활발하다.새로운 남북문제로 등장해 국제회의의 주요 안건으로 잇따라 상정될 정도다. 지식정보시대 진전과 함께 제기되는 국가간 ·계층간 빈부격차 심화가 국제 문제로까지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통부의 유영환 국장은“미국 내에서도 정보 격차에 따른 기회 불균등이 심각하자 관련법을 만들거나 손질하느라 분주하다”라고 말했다.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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