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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서울에 온 수메르 문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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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비운의 조각가' 로 불리는 권진규(權鎭圭.1922~1973)는 생전에 수메르 문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테라코타 작품(67년) '잉태한 비너스' 는 수메르인들이 제작한 풍요의 여신상들과 너무도 비슷하다.

수메르 문명은 인류 4대문명 중 가장 오래된 메소포타미아 문명 중에서도 초기에 해당한다. 무려 기원전 32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니까 그야말로 아득한 옛날이다.

수메르인들은 이 때부터 이미 문자를 쓰기 시작했고, 점토판으로 만든 영수증이나 계약서를 주고 받았다.

점토판에 새겼던 상징문자가 상형문자를 거쳐 쐐기문자로 변해갔으며, 기원전 26세기께에는 흙판에 수십 행씩을 기록한 문학작품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수메르 법전은 인류 최초의 법전으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로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의 모체가 됐다.

전문가들은 수메르인들이 조각작품을 만들 때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 즉 '어떤 물체를 뜻밖의 장소로 옮겨 그 사물의 속성과 다른 엉뚱하고 우연한 장소에서 결합시키는 방법' 을 애용했다고 설명한다.

인체상도 이 기법을 이용해 창조적으로 변형했다는 것이다. 이런 수메르 조각은 근대 서양조각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권진규의 스승인 일본인 시미즈 다카시(淸水多嘉示)가 거장 부르델의 제자였던 점을 감안하면 근대 서양의 수메르 문명에 대한 관심이 그에게 전파된 경로도 짐작된다.

권진규는 일본과 한국에서 활동하다 비극적인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불교미술이나 일본 고미술 등에서도 영향을 받은 그의 작품세계를 수메르 문명 하나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지원의 얼굴' '비구니' 등 그가 빚은 사람의 얼굴들은 한결같이 아득한 시원(始原)의 세계 또는 구원(久遠)의 무엇인가를 절실히 갈망하는 듯한 표정이다.

그것이 혹시 신석기 시대에서 수메르 문명에 이르는 고대 인류사의 어떤 지점은 아닐지. 내일 모레면 한 해가 끝나고 다들 한 살씩 나이를 더해 새해를 맞는다.

세밑이라면 한번쯤 잡다한 일상사를 접고 수천년 전 인류의 모습을 접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도 가치 있다.

지금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전' 이 그런 곳이다. 수메르 시대의 조각작품들도 다수 전시돼 있다. 연말은 물론 정초의 휴일에도 전시장 문을 연단다.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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