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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총재 송년 인터뷰] "DJ는 경쟁대상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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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 중앙일보와의 송년 인터뷰는 28일 오전 여의도의 당 총재실에서 진행됐다.인터뷰는 박보균(朴普均)정치부장이 했다.

-경제위기가 심각합니다.정부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높습니다.위기의 원인을 진단해 주시지요.

“무엇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신뢰를 잃은데 있습니다.IMF위기와 함께 출범한 현정권이 경제를 세우는데 어떤 약속을 할 것인지,국민들이 굉장한 기대를 갖고 봤습니다.

그러나 경제에 대해 자신있게 한 말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오히려 결과가 반대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국민들 신뢰가 떨어졌습니다.

금융 구조조정을 언제까지 완료한다는 말을 수없이 했는데 지켜지지 않았습니다.올해 말까지 한다는 말도 도저히 믿을 수없는 상황입니다.시장의 신뢰를 잃으면 경제는 치명적입니다.”

-시장 신뢰와 관련해 한나라당은 구조조정도 해야하고,그로인한 실업도 막아야 한다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잘못 알려진 것입니다.구조조정은 절대 필요합니다.경제의 틀을 건전하게 해야 합니다.구조조정을 하면 인력 감축과 고용 축소가 뒤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공정한 룰에 의한 고통분담의 원칙이 적용돼야 합니다.기업구조조정을 하면서 기업부실이 경영자나 정부의 정책때문이라면,그 책임자에게도 고통을 분담케 해야 합니다.

구조조정은 기업경쟁력을 높이고 동시에 근로자의 이익까지 함께 고려해가면서 하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영어로 capitalism with human face라고 강조하며)’모양을 갖춰야 합니다.

군사작전하듯 몇달 앞으로 시한을 정해놓고 끝낸다는 발상은 안됩니다.10년 앞을 내다봐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다음 정권에서도 이어갈 수있도록 해야 합니다.”

-난국 극복과 민생안정을 위한 정치권의 다짐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습니다.

“지난 11월 조건없는 등원을 선언할때 초당적인 협조 입장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이제 우리의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아선 안됩니다.국회에 들어와 경제를 바로잡기위해 필요한 몇가지 법적 장치를 마련하거나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공적자금 40조원 신규조성이나 한전민영화법도 필요하다고봐서 바로 동의해줬습니다.사실 그간 야당이,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봐주신다면 몇가지 괄목할만한 일들이 있습니다.너무 자랑인가요.(허허)”

-金대통령이 야당없이 난국극복은 어렵다는 인식을 하는듯 합니다.내년 영수회담에서 金대통령이 거국내각을 제안하면 어떻게 하실겁니까.

“거국내각이란 말이 환상적 의미를 갖는듯 보입니다만 이미 국회 연설에서 나라의 위기를 구할 비상내각 구성을 제안한 바있습니다.

그러나 집권당의 국정 운영의 틀,발상을 그대로 둔채 무늬만 거국내각인 것처럼 해선 국민에게 또 한번 실망을 안겨줄 것입니다.진심으로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정운영의 틀을 새롭게 바꾸면서 나온 거국내각이라면 적절한 사람을 천거할 수 있습니다.”

-李총재가 영수회담에서 주도적으로 초당적 협조선언을 할 용의는 없는지요.

“내년의 어려움은 선언가지고 좌우될게 아닙니다.내년엔 모두 말이 아니라 실제로 웃통을 벗고 달라붙어야 합니다.”

-헌정사상 처음인 ‘여소야대 양당체제’입니다.힘있는 제1야당 총재로선 올 1년을 결산해주십시요.

“4·13총선에서 국민이 1당으로 만들어줬는데 제 역할을 못했다고 반성하고 있습니다.1당으로서 여당이 좀 잘못하고 제대로 움직이지 않더라도 정국을 주도,국민을 안심시키는 정치와 정국을 이끌어갔으면 가장 바람직한 모양인데 그게 어렵더군요.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물론 정치가 수(數)로만 되는 것은 아니지만 1당임에도 DJP공조 내지 연합에 의한 수때문에 소수의 비애를 맛봅니다.그래서 수에 집착하지 않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만 때로는 손해를 보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여야간 주고받기나 힘겨루기식 모양으로 정치를 풀지 않겠습니다.위기 타개를 위해 1당으로서 국민에게 책임지는 자세로 풀겠습니다.”

-여권일각에선 한나라당의 수에 밀려 국정운영이 안된다며 합당론,‘신여권 창출론’등 정계개편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말이 나올때마다 정치가 결국 제자리를 맴돌고 있구나 생각합니다.왜 야당을 제압할 수 있는 수를 가져야만 정치가 된다고 생각하는지.단적인 예로 한전민영화는 제대로 된 길이라고 생각해 야당이 합의,통과됐습니다.

국회에서 통과된 민생법안도 야당이 제대로된 법이라고 생각해 합리적으로 처리한 것입니다.제대로된 법을 만들겠다고 생각하는 한 수의 힘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억지로 하려니까 야당을 제압할 수를 걱정하는 것입니다.(정계개편을)다시 시도한다면 우리는 과감히 대처할 것입니다.”

-일부에선 야당이 여당이 ‘죽을 쑤는데’따른 반사(反射)이익을 누리고 있을뿐 대안제시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우리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여당이 죽을 쑤면 야당이 반사이익을 얻기마련 아닙니까.(허허)여당이 못한만큼 야당이 뛰어나게 잘해 국민을 흡족하게 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아주,아주 반성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했지만 더 노력하겠습니다.공적자금의 경우 총선전에 추가 조성해야한다고 주장했으나 정부가 듣지 않았습니다.그 결과 부실이 증대됐고 오늘의 금융불안 원인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자민련을 정치실체,즉 교섭단체로 인정해주는게 정치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자민련이 DJP공조 내지 연합의 요소로 가거나 갈 가능성이 있는한 교섭단체를 만들어주든 안만들어 주든 정국 불안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자민련이 교섭단체가 돼 야당의 역할을 할 것이라든가 정국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확실한 위치에 설 것이라든가에 대해 국민들이 확신을 못갖고 있다고 봅니다.”

-金대통령이 지난 영수회담에서 李총재에게 ‘나는 차기 대선의 경쟁자가 아니다’란 말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말을 했던 것같습니다.저도 金대통령을 개인적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습니다.야당의 총재로서 지금 여당을 정치의 장에서 선의의 경쟁상대로 보고 있을 뿐입니다.”

-민주당이 판사 후배인 김중권(金重權)대표체제로 출범했습니다.

“(후배라고해서)별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없구요.(웃음)다만 여당이 지도체제 교체과정에서 공백상황이 있었는데 제대로 채워져서 작동됐으면 합니다.여야관계가 제압하고 벼랑으로 몰아서 뭘하는 식이 아닌 상생의 정치란 기본틀에서 정치를 해주길 바랍니다.”

-대통령 4년 중임제등 개헌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찬성하지 않습니다.정말 헌법을 손질할 필요성이 있을때 해야지 조금 손을 대 화장하자는 차원이어선 안됩니다. 지금 헌법과 그 기본정신을 존중하면서도 상당히 합리적 운용을 할 수있다고 봅니다.

중임제·단임제 문제만해도 각각 장단이 있습니다.중임제가 되면 현직 대통령은 모든 지위를 이용,재선되는데 온갖 힘을 쏟을 겁니다.단임제 상황인데도 재집권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충고가 나오는 판인데 중임제 대통령은 어떻겠습니까.정권교체가 요원할 수 있습니다.”

-영호남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선 정·부통령제가 필요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왜 영호남 균형을 위해서 총리를 이용하지 못하죠.시위소찬(尸位素餐)이란 말을 듣던 부통령을 만들어봐야 지금 총리보다 막강하겠습니까.상징적인 자리가 될텐데 영호남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영호남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선 대통령과 총리로 지역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총리실험‘은 김영삼(金泳三)정권때 李총재가 총리로 있을 때 실패했던 것 아닙니까.

“그때도 헌법이 잘못돼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죠.”

-당내 박근혜(朴槿惠)부총재등 비주류의 활동공간을 넓혀줘 당의 역량을 키우는 문제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만.

“그 분들에게 많은 역할을 맡기려 합니다.기존의 당론형성을 위한 기관과 조직들도 보다 활성화시켜 당내 언로가 트이도록 하겠습니다.”

고정애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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