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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랜드마크를 찾아서] 13·끝. 일본 시즈오카 '그란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어디서든 눈만 들면 후지산(富士山)이 보이는 시즈오카(靜岡)는 세계적인 차(茶)의 명산지. 일본에서 장미.단새우.가다랭이 생산량 1위를 자랑한다.

최근 시즈오카에는 명물이 하나 더 늘었다. 지난해 문을 연 시즈오카 컨벤션.문화센터. '그란십(Granship)' 이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도쿄(東京)에서 오사카(大阪)로 가는 도카이도신칸센(東海道新幹線) '히카리' 를 1시간만 타면 시즈오카(靜岡)역에 도착한다.

여기서 JR 도카이도혼센을 갈아타고 3분 걸려 히가시시즈오카(東靜岡)역에 내리면 후지산(富士山)을 배경으로 웅대한 위용을 드러내는 그란십이 바로 보인다.

망망대해를 향해 출발할 준비를 막 끝낸 거대한 배 모양이다. 그란십, 글자 그대로 큰 배라는 뜻이다.

메이지 유신 전까지 2백년 동안 일본 열도를 호령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이 도읍을 정했던 유서깊은 곳이라서일까. 건물의 정면은 사무라이의 투구를 연상케 한다.

그란십은 꿈의 바다, 문화의 바다를 항해하는 거대한 배다. 2006년 국제공항 개항을 앞두고 있는 시즈오카현이 학술.문화.예술의 국제교류 거점으로 마련한 문화의 발신기지다.

1999년 4월 이곳에서 열린 제2회 국제극장올림픽 개막에 맞춰 그란십이 들어선 자리는 원래 일본철도(JR)의 화물창고 겸 차량 보관소였던 곳. 히가시 시즈오카역 주변을 정비한 다음 이를 신도시 개발의 거점으로 만들기 위해 대형 컨벤션.문화센터를 건립하게 된 것이다.

고속철도의 도입으로 고가철로가 세워지고 화물 운송의 주도권이 컨테이너 트럭으로 옮아가면서 철로 주변의 차고나 창고는 다른 곳으로 이전하거나 규모가 줄어드는 추세다.

96년에 착공, 3년만에 완공된 '그란십' 은 시즈오카현 생활문화부 소유의 건물로 시즈오카현 문화재단이 건물을 위탁받아 관리.운영하고 있다.

기차역에 위치해 관객의 접근성이 뛰어난데다 신칸센 창가로 비치는 이 건물의 웅대함은 시즈오카의 상징물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4천6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메인홀 '바다' 는 천장 높이가 58m나 되는 다목적홀. 객석 배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가변형 무대다.

무대 정면의 출입구를 열면 1만5천5백여㎡의 잔디밭 광장으로 바로 연결돼 팝공연.스포츠 이벤트.박람회 등 실내와 야외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무대 연출이 가능하다.

6개 국어 동시통역 시설을 갖춘 8백79석 규모의 중극장 '대지' 는 연극.뮤지컬.발레 공연과 강연회가 열리는 곳. 5백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회의실 '바람' 에서는 정면의 창문을 통해 후지산의 웅대한 모습이 보인다.

또 4백석 규모의 시즈오카 예술극장은 시즈오카 예술극장 재단이 직접 제작하는 공연물이 상연되는 곳. U자 모양의 객석 배열로 최적의 공연 감상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밖에도 회의실(19개).리셉션홀.전시실.영상실.탁아소.레스토랑.카페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란십' 은 4개의 극장.회의실이 하나의 건물 속에 유기적으로 배치돼 있는, 길이 2백m, 폭 80m, 높이 60m의 거대한 '문화의 항공모함' 이다.

설계자인 이소자키 아라타(59)는 큐슈 오이타 태생으로 도쿄(東京)대 건축학과 출신. 군마현 미술관.츠쿠바센터 빌딩.바르셀로나 올림픽홀.교토콘서트홀.나라(奈良)센테니얼홀(98년) 등을 설계했다.

건물 설계 뿐만 아니라 로고와 안내 표지까지 유명 디자이너에게 제작을 의뢰했다. 로고를 디자인한 자비에 에란도 마리스칼(40)은 스페인 발렌시아 태생으로 바르셀로나올림픽 공식 마스코트인 코비를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시즈오카=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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