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대기자의 투데이] 워터게이트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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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에서 정권이 한번 바뀔 때마다 교체되는 연방정부의 고위관리는 5천명에서 6천명 정도라고 한다.

정치학자 함성득 교수(고려대)에 따르면 클린턴이 1993년 집권한 뒤 정권교체에 따른 인사를 끝내는 데는 6년이 걸렸다니 4년의 단임으로 끝나는 대통령은 장관에서 과장급까지의 감투들을 벗기고 씌우는 쾌감을 다 누리지는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엽관제도는 1829년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 이래의 전통이다.

새 대통령의 인사에는 특정지역에 편중된 인사라는 시비가 거의 없다. 1961년 취임한 존 케네디 대통령은 하버드대 출신들을 대거 요직에 앉히고 법무장관에는 동생 로버트를 임명했지만 뒷말이 없었다. 모두가 당대 최고의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69년 취임한 리처드 닉슨이 이 제도를 악용했다가 임기 중에 사임한 미국 최초의 대통령이다. 그는 백악관과 정부의 요직을 자격 미달의 캘리포니아 출신들로 채웠다.

비서실장 홀드먼, 국내문제담당 보좌관 얼리크먼, 대변인 지글러, 의전비서관 체이핀이 그들이다.

77년 지미 카터를 따라 백악관에 들어간 조지아주 출신들도 비서실장 해밀튼 조던을 '대부' 로 조지아 마피아를 형성했지만 카터의 재선전략을 망쳐놓은 것 말고는 캘리포니아 마피아에는 비할 바가 못됐다.

캘리포니아 마피아는 조폭(組暴)의 식구들같이 닉슨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미국판 가신(家臣)들이었다.

그들은 닉슨을 위해서라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기세로 돌진했다. 닉슨을 임기 중 사임하게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도 그들의 '닉슨 신앙' 의 산물이다.

72년 워싱턴 포토맥 강변의 민주당 전국본부 사무실에 5명의 '도둑고양이' 를 침투시켜 도청장치를 달다가 현장에서 체포된 사건이다.

백악관의 비서실장은 부하들과 함께 닉슨의 재선을 위해 민주당 본부를 도청했을 뿐 아니라 민주당의 유력후보로 떠오르는 에드워드 케네디의 여자관계를 캐고, 또 한 사람의 후보 에드먼드 머스키를 비방하는 가짜편지를 언론에 흘리는 공작을 지휘했다. 사건이 터진 뒤에는 닉슨과 함께 사건의 은폐를 모의하고 수사를 방해했다.

닉슨을 떠받든 캘리포니아 마피아같이 카리스마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특정지역 출신들의 도원결의(桃園結義)로 뭉친 조직은 권력의 공개념에 둔감한 것이 문제다.

정치적인 영향력을 이용해 이권과 주요 인사에 개입해도 조직 안에서는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

이런 떼거리 의식은 정치문화의 수준을 끌어내려 정치를 '개판' 으로 만든다. 큰일 있을 때마다 그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측근 그룹인 동교동계가 권노갑(權魯甲)씨의 후퇴와 민주당의 지도부 개편으로 적어도 당분간은 상당히 힘이 빠진 것은 정치의 건강회복을 위해 참으로 다행이다.

그들이 지난달 어느 요정에 모여 형님, 아우님, 제가 죄인입니다 하고 세(勢)의 약화를 당한 자신들을 스스로 위로하는 장면은 너무 애절하고 또 유치했다.

그들은 지역을 이름 딴 마피아로 불리지는 않지만 金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으로 뭉친 '가족들' 이라는 점에서는 체질의 정화(淨化)가 필요한 조직이다.

존경하는 지도자를 따르고 그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 자체는 탓할 게 없다. 그러나 문제는 끼리끼리 뭉친 배타적인 조직에는 햇볕이 안들고 바람이 안통하고 합리정신이 설 자리가 없다. 그것은 공당(公黨)의 조직이 아니다.

지도자가 주위에 인간적으로 가까운 사람을 두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더군다나 동교동계 사람들은 金대통령과 민주화투쟁의 고난을 함께 한 동지들이다.

그러나 '눈빛만으로도' 金대통령과 교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나라를 경영하고 당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면 동교동계가 앞으로 2년 동안 힘이 빠진 상태로 있는 것이 나라와 金대통령을 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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