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문학비 마침내 우뚝 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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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 이태준문학비와 흉상 사이에 선 시인 민영씨. 문학비 글씨는 서예가 한철주씨가 썼다. 아래 사진은 마해송아동문학비.

빼어난 단편들로 1930년대 근대문학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소설가 상허(尙虛) 이태준(1904~?)의 문학비와 흉상이 16일 강원도 철원군 대마리 생가 부근 마을회관인 두루미평화관에서 제막됐다.

이태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상허 이태준 문학제'로 치러진 행사는 제막식 후 시인이자 무속인인 오우열씨의 진혼굿, 추모시 낭송과 이태준 소설 낭독, 한탄강 고석정에서의 유등 행사로 이어졌다. 문학비 건립을 주도한 민영(70)시인과 외조카인 서울대 김명렬(영문과)교수, 행사를 주최한 민족문학작가회의와 대산문화재단 관계자, 신경림 시인 등 문인 200여명이 참가했다. 제막식 후 만난 민씨는 "아까는 울음이 터져나올 것 같더니 지금은 웃음이 솟아난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말 문학비 건립 추진에 나선 뒤 겪은 적지 않은 마음 고생이 느껴졌다.

문학비 건립이 순탄치 않았던 것은 철책선을 코앞에 둔 지역 특수성 때문이었다. 6.25 격전지 백마고지의 고장이고 상당수가 참전용사인 주민들은 당연히 '월북작가'의 문학비 건립을 반대했다. 결국 지역 여론에 민감한 철원군도 등 돌린 상황에서 민씨는 지난해 결성된 이태준 문학제 100주년 기념사업회와 함께 자금은 물론 문학비가 들어설 부지까지 마련해야 했다. 군은 당초 민씨가 요청한 한탄강변 군유지 제공도 거부했지만, 대마리의 40대 젊은 이장 김동일씨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하고 부지도 제공했다고 한다.

이태준 문학비는 94년에도 추진됐었다. 92년 결성된 상허문학회에서 탄생 90주년을 맞아 건립하려고 했던 것. 당시에도 주민 반대에 부닥쳐 무산되고 말았다. 88년 해금 후 16년 만에, 건립 추진 10년 만에 걸출한 단편소설 작가의 문학비를 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이날 오후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 내 중앙호수 공원에서는 아동문학가 마해송(1905~1966)의 아동문학비 제막식도 열렸다. 마해송아동문학비는 건축가 승효상씨가 설계했다.

철원=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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