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김명리 '싸락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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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하늘 위의 집을 허물기란

땅 위의 그것 보담 쉽지 않아서

반은 하늘의 뜻이고

반의 반은 저의 탓이고

그 나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라

저와 나는

먹구름 속의 살얼음을 한 장씩 떼내어

발 밑에 누르고

이따금

세상 밖까지 황황히 몰리곤

흩어지곤 하였는데

삼백 예순 꽃그늘을 얼리고

적시고 하였는데

- 김명리(41) '싸락눈'

펑, 펑, 목화송이 같아야만 눈일까? 싸락눈은 밟는 이의 발자국에 따라 어머니의 흰 고무신도 되고 그리움도 되는 것. 그런데 김명리는 생각도 깊어 하늘 위의 집까지 허물려 들고 하늘의 닻과 저의 닻을 모아 살얼음 떼내는 데까지 우리를 끌고 간다.

싸락눈이 쏟아지기까지 물은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만났다가 흩어지는 것인가. 하늘의 일이라 알 수는 없다만 분명코 이 얼음덩이를 쏟아낸 가슴은 있을 것이네.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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