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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남북시대 송년특집] 무엇이 달라졌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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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올해는 분단 55년 만에 남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서로 손을 맞잡으면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주변정세가 급류를 탄 한해였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적극적인 화해.협력정책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대남정책 수정이 어우러지면서 그전 같으면 기대하기 어려웠던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북한은 올해 대외관계를 적극적으로 펼쳐 나가면서 경제살리기에 주력했다. 이에 따라 살림형편은 다소 풀린 것으로 관측된다.

金위원장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아시아지역판에서 '올해의 인물' 로 뽑힐 정도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북한의 한해를 분야별로 짚어보는 결산 특집을 마련했다.

1994년 7월 김일성(金日成)주석 사망 이래 줄곧 방어적인 대외자세를 보여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손을 잡음으로써 전략적 돌파구를 여는 데 성공했다.

은둔을 깨고 나온 金위원장은 전세계 언론으로부터 '합리적' 지도자라는 평가를 얻었다.

가장 눈에 띄게 변한 것은 북한의 대남전략이었다. 지난 50년간 '남한〓미제의 식민지' 논리를 견지해오던 북한은 金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함으로써 한반도에 두 개의 주권국가가 존재함을 사실상 인정했다.

이는 金대통령의 햇볕정책이 북한 붕괴나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판단을 金위원장이 내렸음을 뜻한다.

북한의 대남 자세 변화는 네차례의 남북 장관급회담을 비롯, 국방장관회담.경제실무회의, 그리고 두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으로 이어졌다.

북한 대남전략의 본질적인 내용이 변했는가를 판단하기에는 지난 6개월은 너무 짧다. 다만 金위원장이 경제회생에 나서면서 대외관계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남북관계를 그 중요한 고리로 삼게 된 것만은 틀림없다.

이에 따라 북한은 90년대 이래 고수해온 통미봉남(通美封南)전략을 일단 수정했고 동시다발적인 적극외교로 돌아섰다.

金위원장 특유의 '입체전' 개념이 외교분야에 도입돼 한반도 4강외교에 적극 나섰고 아태.유럽지역 국가들과의 외교관계 정상화가 동시에 추진됐다.

북한은 경제회생을 위해서는 대외개방이 불가피하다고 인식, 특히 경제특구 확대 및 외국자본 유치를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 91년만 해도 북한에는 나진.선봉 경제특구가 해외의 자본.기술 유치를 위한 유일한 창문이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 나진.선봉 외에 금강산 관광특구.개성공단.신의주.남포.원산 등 다섯곳에 경제특구가 설치됐거나 추진되고 있다.

북한 내부에서는 '실용주의' 가 목격된 한해였다. 金위원장은 '북한판 새마을 운동' 에 직접 나섰다. 그는 올해 군부대 시찰을 대폭 줄이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양어장과 토지정리 사업장을 방문했다.

전 사회적으로 실력 양성을 강조하는 것은 물론 과학기술 입국에 주안점을 두었다. 실용주의 바람을 타고 김일성 시대 원로들이 사실상 물러나고 50~60대 중심의 북한판 386세대 엘리트들이 책임자로 부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의 이같은 변신에도 불구하고 '주체북한' 의 기치 아래 정치.경제의 제도 개혁은 미흡했다. 대남.대외관계에서도 기존틀을 완전히 깨뜨리지 않았다.

이를테면 6.15 공동선언이 연방제 통일방안 수용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줄곧 주장했으며 평화협정에 대해서도 북한과 미국이 직접 담판지을 사안이라는 종래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올 한해 사회기강의 고삐도 더욱 바짝 죄었다.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주민 대상으로 주1회 실시하던 사상교양을 더 늘렸다. 북한은 주민 교육과정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그 어떤 환상도 갖지말라' 고 주입하는 것으로 관계기관은 파악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군사훈련도 강화했다. 북한군은 지난해 12월 강도 높은 동계훈련을 실시한 데 이어 8월 기갑부대가 포함된 대규모 기동훈련을 실시했다.

지난 11월 서해 해상에서 10차례가 넘는 해상시위를 감행하기도 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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