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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우석 칼럼

경제난과 고결한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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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경제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어렵고 그 다음도 불투명하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분위기란 면에서도 설명이 가능하다. 하늘을 우러러보아 한 점 부끄럼 없는 것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사람들을 관용과 연민의 정으로 보살피기보다 심판하고 야단치는 데 능하다. 칭찬에 인색하고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을 더 열심히 찾아낸다. 이런 각박한 분위기에서 경제는 위축되기 쉽다. 경제는 어차피 욕심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며 펼치는 행위이므로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게 마련이다. 너무 고결한 잣대를 들이대거나 기준이 들쭉날쭉하면 피어나기가 어렵다.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고 세상인심이 후해야 잘 돌아간다.

요즘 경제 정책에 관여하는 주주 그룹들을 보면 매우 순박하고 당당하다. 사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선 추상 같다. 사명의식도 높고 그 사회악을 제거하기 위해 대담한 실험도 서슴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다소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에 대해선 이해가 덜하다. 나타난 사회악만 보이지 그 뒷면과 사람이 안 보이는 것이다.

부동산 정책만 해도 그렇다. 집값이 올라 서민들이 고생한다 하니 서릿발 같은 투기억제책을 내놓는다. 여기에 누가 이견을 달 수 있는가. 왜 집값이 오르고 왜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려 하는지, 또 부동산 경기가 식으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선 고려가 적다. 시퍼런 조처 때문에 집값 상승과 투기는 일단 그쳤다. 그 대신 부동산 경기가 일시에 얼어붙었다. 일용노동자의 일거리가 없어지고 관련 산업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집을 안 지으니 몇 년 뒤 집값이 걱정이다.

기업정책도 마찬가지다. 경제력 집중과 대기업의 잘못을 시정하겠다는 사명감이 매우 높다. 투자가 안 된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출자총액제와 지배구조 개혁 소신은 흔들리지 않는다. 사회 분위기도 실수에 대해 매우 엄하다. 백번 잘하다가도 하나를 실수하면 뭇매를 각오해야 한다. 그러니 자연 모험을 하기보다 실수 안 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경제부총리가 아무리 도전적 투자를 좀 하라고 강조해도 통하지 않는다. 막상 일이 벌어졌을 때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투자를 막거나 기업 활동에 장애되는 것이 있으면 내놔보라고 한다. 문제는 분위기인데 분위기를 어떻게 내놓을 수 있는가. 이래서 국가경쟁력 순위가 떨어지는 것이다.

얼마 전 독과점 폐해가 우려된다고 한 피아노 업체를 쓰러지게 한 사례도 있다. 그에 따라 많은 영세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자도 생길 것이다. 그것도 사명감에서 한 일이니 대책이 없다. 최근엔 성매매 단속 강화로 서비스업이 된서리를 맞았다. 명분 좋고 옳은 일이니 누구도 반대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걸 보완책 없이 밀어붙일 때 부작용은 없을까. 서비스 쪽의 위축은 말할 것도 없고 당장 그들의 생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이 더 음성화되지는 않을까. 그러면 그런 사회악을 내버려두라는 말이냐고 반박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인간의 본성이나 절박한 현실 문제도 고상한 명분과 사명의식에 비하면 작은 문제인지 모른다. 지금 국력을 걸고 있는 과거사 정리 문제 등도 비슷하다.

1920년대 미국에선 술의 폐해를 근절한다고 금주법(禁酒法)을 시행한 적이 있었다. 후에 후버 대통령이 말한 대로 "고귀한 동기와 원대한 이상을 가진 경제적.사회적 실험"이 시도됐던 것이다. 술이 이 세상에서 일소돼 질서 있는 사회가 실현될 것으로 기대했다. 누가 감히 반대를 하겠는가. 그러나 금주법은 지하 술집과 조직범죄의 번창이라는 의외의 사태를 낳았다. 그래도 그 훌륭한 명분 때문에 완전 폐기되기까지 1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다. 고결한 실험이 많아질수록 경제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것을 깨닫기까지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까.

최우석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