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여의도의 크리스마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여의도 순환버스 안에서 바깥 풍경을 내다보는 일은 유람선 타는 것 못지않게 재미있다.

온갖 잘난 사람 드나드는 방송사, 목소리 큰 사람 모여 북 치고 장구 치는 국회, 사람은 침묵하고 돈이 말하는 증권거래소, 수족관에 전망대까지 갖춘 초고층 빌딩, 강바닥보다 깊은 최첨단 공법의 지하철, 현금서비스기계까지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예배당…TV적으로 간추리면 비디오는 현란하고 오디오는 소란하다.

*** 갖은 충돌로 늘 시끌벅적

국민가수 조용필의 자작곡 '꿈' 은 여의도 주제가라 할 만하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라고 그는 열창한다.

분 바른 여의도는 두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스타 지망생에게는 화려한 꿈의 공장이자 낙오한 자들에겐 퇴락한 현실의 쓰레기 하치장이기도 하다.

여의도의 이력은 물량의 역사다. 선거 유세가 한창일 때는 누가 더 유권자를 모았는지 후보마다 위세를 부렸고 국군의 날에는 탱크부대 위로 공중낙하 시범이 벌어졌다.

한때 1백만 성도가 모여 통성으로 구국의 기도를 했는가 하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의 함성으로 섬 전체가 활화산처럼 들끓었던 곳. 광장은 언젠가부터 공원으로 바뀌었고 옮겨 심어진 나무들은 축 처진 채 말이 없다.

여의도에는 작고 큰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여야간의 소모전은 말할 것도 없고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노동자 대열이 전경들과 몸싸움을 하는 일도 다반사다.

의문사의 진상을 요구하며 몇 달간 천막시위를 벌인 곳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이었다. 2000년 12월에도 전운이 감돌았다.

이른바 종교전쟁. 독일의 30년전쟁에서 신교와 구교가 대립했다면 21세기 한국에선 종교집단과 방송사가 전쟁의 주체다.

원인제공은 종교지만 선전포고는 언제나 방송이 먼저다. 종교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

어떻게든 평화를 유지하려(방송을 막아보려) 강화조약을 하고 싶어한다. 전 채널을 동원해 제작진을 구슬리고 으른다. 그래도 협상이 성사 안될 때 비로소 결사항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정치건 경영이건 교육이건 종교건 간에 사람이 모여 하는 일이란 모름지기 투명해야 한다. 떳떳하다면 왜 막고 숨기는가.

밀실에서 광장으로 걸어 나와 정정당당하게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알리고 이해시켜야 한다. 뚜껑을 덮어두면 술이나 된장은 익지만 음침한 세상사를 덮어두면 발효되지 않고 그냥 썩을 뿐이다.

'남이야 전봇대로 이를 쑤시든 말든 상관 말라' 는 말은 그만 두자. 전봇대는 그의 이쑤시개가 될 수 없다.

무뢰한이 전봇대로 이를 쑤시는 동안 세상이 정전되지 않는가 말이다.

밝음을 노래하는 프로그램은 구르는 돌처럼 많아도 어둠을 몰아내려는 프로그램은 모래밭의 금만큼 적다.

방송에서 종교의 이면을 들춘다는 건 그야말로 '목숨 걸고' 하지 않고서는 해내기 어려운 도전이다.

여러 차례 종교비리를 다뤘던 'PD수첩' 의 윤길룡 PD(방송 도중 신도들의 난입으로 화면에 때아닌 얼룩말이 나타나게 했던 장본인)와 '그것이 알고 싶다' 의 남상문 PD는 경찰에 신변보호까지 요청했을 정도다.

이번 싸움 역시 전통(□)의 두 프로그램이 시위를 당겼다.

'성역은 없다' 를 호신부로 내걸고 '그것이 알고 싶다' 는 할렐루야 기도원과, 'PD수첩' 은 초대형 교회와 맞붙었다.

사안은 다르지만 누구 하나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시청자의 관전평은 결국 두가지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용감하거나 혹은 무모하거나.

*** 어둠 몰아내는 용기를

문제는 일관성의 결여다. 국회에 들어가기 전에는 살신성인을 외치다가 국회에 들어가서는 졸지에 양두구육으로 변신한다면…, 눈물의 기도를 끝내고 예배당을 나서면서 막상 교회 문 앞의 걸인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면…, 권선징악의 드라마나 진실이 승리하는 다큐멘터리를 보며 박수를 보내다가도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며 전의를 불태운다면… 그 편리한 입장주의와 아전인수적 해석이야말로 새해에는 말끔히 청산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 싶다.

내일 모레면 성탄절이다. 2천년 전 예수가 어떤 모습으로 와서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를 기억하자. 성탄절의 의미는 부활이다.

지혜로 가리고 용기로 내닫고 정의로 심판하자. 종교도 방송도 죽일 건 죽이고 살릴 건 살리자. 그래야 세상이 썩지 않고 발효한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