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토요이슈] 도덕·당위만 앞세운 법들 결국 실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도덕과 당위성만 앞세웠던 법들은 실제 집행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부작용을 불러왔다. 단속과 처벌에 치중한 현재의 성매매 처벌법도 신축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미국의 경우 1919년 1월 모든 술의 제조.판매를 금지하는'금주법'이 발효됐다. 그러나 이 법으로 음주가 줄기는커녕 술을 밀매하는 마피아 조직이 날뛰었다.

대도시에는 무허가 술집이 들어서고, 관청에는 불법 행위를 보호하기 위한 뇌물이 판을 쳤다. 공업용 알코올이 술로 둔갑해 팔리는 바람에 목숨을 잃는 사건도 발생했다. 결국 33년 금주법이 폐지됐다. 경직된 법 적용으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만에서는 99년 타이베이(臺北)시는 공창제 폐지 법안을 마련해 2년간 유예기간을 준 뒤 2001년 공창 철거를 시작했다. 지난 40년여년간 유지된 공창제가 없어진 지금 타이베이시에 공식적으로 공창은 없다. 그러나 성매매 여성들은 지하로 숨어들어 현재 대부분의 성매매가 주택가 등 은밀한 곳에서 이뤄진다는 게 현지 여성단체의 얘기다.

우리 나라에서도 입법 취지는 좋았지만 현실적 부작용을 충분히 감안하지 못한 입법사례로 89년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이 꼽힌다. 당시 국회는 법이 보장하는 전세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는 쪽으로 주택임대차 보호법을 개정했다. 서민의 주택난과 전세금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듬해 1월 막상 법이 시행되자 집주인들은 2년치 전세금을 한꺼번에 올려받는 일이 벌어졌다. 집주인들이 법에 따라 한번 전세를 주면 2년 동안은 보증금을 올릴 수 없을 테니 미리 최대한 올려버린 것이다. 세입자들은 전세금을 올려줄 돈이 없어 한겨울에 길거리로 내몰리는 등 '전세대란'이 벌어졌다. 보호하려고 했던 서민들에게 경제적 부담과 주거 불안정이란 짐을 지운 것이다.

경찰 재직 시 성매매 단속에 앞장섰던 김강자 전 서울종암경찰서 서장은 "성매매가 근절돼야 한다는 점에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중요한 것은 '전략'이 있어야 한다"면서 "단속을 하더라도 술집.보도방 등 음성적 성매매부터 처벌한 뒤 집창촌은 국가에서 관리하면서 개선해 나가는 식의 단계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세정.김현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