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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는 SBS로 본다, 그럼 남아공 월드컵은?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지난 3일 박영문 KBS 스포츠 국장은 단단히 화가 나있었다. 밴쿠버 겨울올림픽 단독중계권을 가진 SBS와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응당 SBS에 대한 불만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방송통신위원회를 성토했다.“국민 관심사인 올림픽을 공영방송이 중계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방송법에 규정된 ‘보편적 시청권’에 근거해 공동중계를 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방통위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방통위는 KBS와 MBC가 지난달에 제출한 방송분쟁조정 신청을 정식 안건으로 처리하지 않았고, 결국 밴쿠버 겨울올림픽은 SBS가 단독으로 중계를 시작했다.한 방송사가 올림픽을 단독 중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BS는 대단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올림픽이 열리는 13일부터 3월 1일까지 17일간 총 200시간을 올림픽 중계에 쏟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통상 겨울올림픽에 지상파 3사가 중계한 총 150시간보다도 50시간이 많다. 한국선수 경기뿐 아니라 해외선수들끼리 하는 경기라도 주요 경기는 모두 중계를 하겠다는 거다.

그러자 KBS와 MBC가 ‘올림픽 취재 포기’로 맞불을 놓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중계권을 보호하기 위해 중계권이 없는 방송사는 보도용 촬영도 하지 못하게 한다. 중계권을 확보하지 못한 양 사는 SBS에 공동 중계와 함께 취재기자의 활동을 보장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SBS가 “IOC에서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1일 2분 분량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제공하겠다”고 하자 양 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그 정도라면 하지 말라는 얘기’라며 아예 현지 취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그 정도가 아니다. 전쟁은 점입가경이다.

KBS는 지난 8일 스포츠 뉴스를 통해 ‘중계권 갈등 해결을 위한 연속기획보도’를 시작했다. ‘독점 중계 폐해’라는 3분여짜리 리포트를 통해 “상업방송자본에 의한 스포츠 독점중계는 사회통합기능 약화는 물론 가격 상승을 통한 국부유출 등 부작용을 불러온다”고 비난했다.MBC도 9일 “공영방송 MBC는 상업방송 SBS의 독단적 올림픽 중계 결정으로 중계방송을 포기한다”면서 “SBS의 비협조로 올림픽 보도 역시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KBS·MBC, ‘월드컵은 포기 못 해’
어쨌든 1차 전쟁은 ‘SBS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러면 이제 좀 잠잠해질까. 천만의 말씀이다. 더 큰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바로 6월에 개막하는 남아공 월드컵이다. 내막을 알고 보면 이번 올림픽 중계권 싸움은 사실 월드컵 중계권을 염두에 둔 ‘예비전’ 성격이다.SBS는 2006년 IOC와의 계약을 통해 2016년까지의 네 차례 겨울. 여름 올림픽(2010 밴쿠버, 2012 런던, 2014 소치, 2016 리우) 단독중계권을 따냈고,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두 차례 월드컵(2010 남아공, 2014 브라질) 중계권도 가져왔다.

KBS와 MBC가 올림픽 개막을 한 달도 남겨 놓지 않은 1월 26일에 방송분쟁조정 신청서를 낸 것도 다 월드컵 중계권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올림픽은 포기하더라도 월드컵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게 양 사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데 속사정을 보면 SBS도 비슷한 입장이다. SBS는 8일 서울 목동 사옥에서 밴쿠버 겨울올림픽을 단독 중계한다는 공식 발표를 하는 자리에서 “월드컵 등 나머지 대회에 대해선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MBC 역시 중계와 취재 포기를 선언한 보도자료에서 ‘여전히 올림픽, 월드컵이 국민 관심이 지대한 국가적 행사로서 다른 지상파 채널에서도 공평하게 방송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며 ‘이후 남아공 월드컵 방송권 재분배에서는 SBS가 합의 위반과 책임을 겸허히 인정하고 성실하게 협상에 응해 합동방송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 MBC도 최선을 다해 협상에 임할 예정’이라고 밝혀놓았다.

SBS는 그동안 수차례 “우리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단독 중계한다는 원칙하에 편성표를 짰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SBS 역시 처음부터 단독 중계를 할 생각은 없었다. 예전처럼 다른 방송사에 중계권을 판다는 계획이었다. 한 SBS 관계자는 “처음에는 올림픽은 MBC와 공동으로 중계하고, 월드컵은 KBS와 공동으로 중계한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얘기는 다분히 시청률을 의식한 발언이다. 즉 올림픽 중계에 강점이 있는 KBS를 올림픽에서 빼고, 월드컵 중계 시청률이 높은 MBC는 월드컵에서 뺀다는 계산이다.그러나 KBS와 MBC가 3사 합동으로 만든 ‘코리아 풀’ 원칙을 깨고 SBS 단독으로 계약했다고 비난하며 협상에 응하지 않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단독 중계를 하게 된 것이다.

SBS, ‘들인 돈은 보상받아야’
단독 중계는 부담이 크다. 일단 IOC와 FIFA에 내야 하는 돈이 혼자 감당하기엔 버겁다. 광고 수입이 예상대로 따라와 주지 않으면 큰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올림픽 중계로 인해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이중 부담이다.그나마 올림픽은 상대적으로 중계권료가 적지만 월드컵은 다르다.SBS의 계약 내용을 보면 밴쿠버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을 합쳐 3300만 달러를 IOC에 낸다. 밴쿠버 올림픽만 떼어서 보면 1650만 달러(약 190억원) 정도다. 그러나 FIFA에 내야 하는 월드컵 중계료는 남아공 월드컵 하나만 6500만 달러(약 750억원)다. 네 배 가까이 된다.

아무리 월드컵이 겨울올림픽보다 관심이 크고 장사가 잘된다 해도 이 액수를 SBS 혼자 감당할 수 없다. 방송 시간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광고 단가를 높인다 해도 거액의 적자가 예상된다.그렇다면 결론은 나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남아공 월드컵은 3사 공동중계다. 문제는 어떤 식으로 합의하느냐다. 즉 ‘돈’이다.

SBS는 통상적인 재협상권 비용 외에 지난 3년간 들어간 부대비용을 양 사가 부담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요약하면 이런 얘기다. 월드컵 중계권에는 ‘의무사항’이 포함돼 있다. 즉 월드컵 외에 FIFA가 주관하는 대회도 중계를 해야 한다. 양 사의 협상 거부로 2007년 17세 이하 월드컵(한국 개최) 54경기를 SBS 혼자 국제신호로 제작하고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제작비만 2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2007년 청소년 월드컵(20세 이하), 2007년 여자 월드컵을 모두 SBS 혼자 부담했다. 직접 비용뿐 아니라 금융 비용과 때마침 터진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환차손까지 떠안아야 했다는 얘기다.

더구나 KBS와 MBC가 징벌적인 의미로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것은 아시아축구연맹 소관이다)과 베이징 올림픽 축구 아시아 예선 중계에서 SBS를 배제한 데 따른 손해도 거론했다. SBS는 KBS와 MBC가 월드컵 중계권 협상을 하려면 이런 부분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한 양 사의 입장은 이렇다.‘월드컵 중계는 포기 못한다. 그동안 SBS가 의무사항을 혼자 부담한 것 인정한다. 일정 부분 감안해 보상하겠다. 하지만 사태의 원인 자체가 SBS의 합의 위반이므로 우리가 다 부담할 순 없다.’올림픽이 끝남과 동시에 지상파 3사의 월드컵 중계권 협상은 시작될 것이다. 올림픽 중계 전쟁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큰 전쟁이 예고돼 있다.‘3사 공동 중계’라는 방향은 정해져 있지만 전쟁의 결말은 결국 돈의 규모와 상처 난 자존심을 어떻게 무마하느냐의 방식에 달려 있다.

다른 변수는 방통위다. 방송사끼리 해결을 못하고 대립이 계속된다면 결국 방통위가 개입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SBS는 개별 방송사끼리의 문제에 방통위가 끼어들 명분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월드컵 중계에까지 방통위가 팔짱 끼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손장환 중앙일보 스포츠 선임기자inher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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