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호남· 비동교동계의 '김중권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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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당 총재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다듬어온 당 대표 카드는 '김중권(金重權)최고위원' 이었다.

권노갑(權魯甲)최고위원의 사실상 정계 은퇴, 그리고 서영훈(徐英勳)대표의 퇴진에 따른 공백을 '새로운 이미지와 틀' 로 메울 구상이 깔려 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새로운 이미지 창출은 당에 묻어 있는 동교동계 가신(家臣)정치의 색깔을 탈색하고, 호남 편중의 인상을 씻는 데 초점을 맞췄다.

權위원의 자진 2선 사퇴는 그 예고편이었다. 김중권 위원과 경합을 벌였던 김원기(金元基)고문이 탈락한 것은 그가 호남 출신(전북 정읍)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반면 현정권의 TK 간판인 金위원은 비(非)호남이면서 비동교동계다. 金위원은 근소한 표차로 4.13 총선에서 낙선(경북 봉화-울진)했지만 선거과정 내내 '동서화합을 통한 지역감정 해소' 를 역설했고, 8.30 최고위원 경선에서도 이를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았다.

또 金위원이야말로 金대통령의 의중을 당 운영에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점이 고려됐다고 한다. 金위원은 현 정권의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 출신이다. 당시 조직 장악력도 보여줬다.

특히 金위원은 '민주당 운영의 시스템화' 를 강조해 왔다. 그의 이같은 지론은 金대통령에게 받아들여져 민주당 쇄신의 중심 이론으로 자리잡은 상태다.

이런 점들이 金위원이 '원외(院外)라는 약점' 을 딛고 대표 자리에 오를 수 있는 배경이라고 청와대 참모들은 설명한다.

金대통령은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한.중.일' 회의에 갔을 때 金위원을 수행시켰다.

당 관계자는 "金대통령은 당시 金위원을 독대해 많은 얘기를 들은 것으로 안다" 고 설명했다.

사퇴를 선언한 권노갑 최고위원은 김원기 고문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지는 반면 서영훈 대표는 후임으로 金위원을 추천했다는 설이 있다.

金위원이 최고위원 경선 때 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과 사실상 연대했다는 점도 고려됐을 수 있다.

그러나 '김중권 대표' 체제에는 여러가지 장애물이 있다. 그가 차기 주자라는 점에서 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 등 경쟁자들로부터 견제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정권 출범 초기에 金위원과 이종찬(李鍾贊)당시 국가정보원장이 이른바 신주류로, 權위원 등 동교동계가 구주류로 분류되면서 물밑에서 경합했던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金대통령도 이같은 점을 의식, 신임 대표에게 상당부분 권한을 위임하는 동시에 최고위원들의 위상을 강화해 불만 요인을 최소화하고 당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생각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金대통령은 내년에 가시화할 차기 경쟁구도와 정계개편까지 감안해 당 쇄신 구상을 가다듬는 것으로 안다" 고 말했다.

이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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