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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인, 그들의 리더십을 발견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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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호 01면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란 사람이 있다. 그는 일본 에도시대 시코쿠(四國)의 작은 마을 토사번(土佐藩)에서 천대받던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9세 때 넓은 세상을 보겠다는 생각 하나로 고향을 떠나 에도로 유학 길에 나섰다. 페리 제독의 무력시위에 무너진 막부를 보면서 그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이후 막부를 타도하기 위해 무사들을 규합했으며 근대국가로서 일본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왕에게 통치권을 돌려주는 '대정봉환’(大政奉還)을 성사시킨다. 일본인들은 그를 메이지 유신의 영웅이자 나라를 변방의 작은 섬나라에서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성장의 기틀을 닦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공동기획 ] 2010 국가 리더십 탐색

그 료마가 요즘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일본 NHK의 대하드라마 ‘료마전(龍馬傳)’이 21.2%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학계와 언론계는 료마의 업적과 사상의 재조명 작업에 한창이다. 료마 열풍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2000년대 초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그는 일본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꼽혔다.

흥미로운 점은 시대에 따라 대중에게 투영되는 료마의 모습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1960년대 기자 출신인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소설을 통해 그려진 료마는 오직 난세로부터 일본을 구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한 지사(志士)로 묘사됐다. 2010년의 료마는 대중과 호흡하며 다른 의견들을 포용하는 관대한 지도자로 그려지고 있다. 누나친구들과 시와 수필을 주고받고, 주민들과 함께 향토의 여유로움을 즐기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한 인물이라는 점이 강조되는 것이다.

지금 지구촌은 료마 같은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낡은 트럭을 몰며 50년 민주당 아성을 무너뜨린 스콧 브라운에게 열광한 미국 매사추세츠 유권자들과 같이.그것은 대중으로부터 출발하되 대중의 의사를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비전을 설득하는 리더십이다. 정치인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을 앞세워 온 전통적인 카리스마 리더십이 퇴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학문적으론 ‘민주적 리더십’(democratic leadership)이자 ‘구성적 리더십’(constructive leadership)으로 불린다. 전자가 대중의 의사를 대변하는 능력을 강조한다면 후자는 사회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을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설득해내는 능력을 강조한다.

한국의 정치 리더십은 어떤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필자는 2012년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는 주요 정치인 11명에 대한 ‘말과 글’(연설·홍보물·출판·언론 인터뷰 등 텍스트)을 집중 분석했다. 11인은 최근 5년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3% 이상을 받은 사람들이다. 텍스트 분석은 중앙일보와 중앙SUNDAY가 정치학·역사학·행정학·경영학·언론학자 8명과 지난해 말부터 넉 달간 진행해온 공동기획조사 ‘2010 국가 리더십 탐색’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필자의 텍스트 분석 결과 11명의 잠재적 예비 후보군에 든 정치인들은 민주적·구성적 리더십의 필요성을 충분히 알면서도 민감한 정치 사안에 부닥쳤을 때 전통적 리더십 패러다임과 이분법적 리더십 분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좌우의 이념적 갈등, 진보와 보수의 대립, 그리고 지역과 여야라는 이분법적 정치 지형이 이들에게 족쇄로 작용하고 있었다. 11명의 텍스트에선 저마다 특정한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개성적인 유형상의 특성을 찾을 수 있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 대중친화적이면서도 도덕성과 소명의식이 녹아 있는 ‘소명형 리더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몽준 대표는 ‘글로벌 CEO형 리더십’, 오세훈 서울시장은 ‘감성적 수호자형 리더십’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섬김형 리더십’이다.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는 ‘실사구시형 리더십’으로,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은 ‘대중조응형 리더십’으로 이름 붙일 수 있다. 한명숙 전 총리는 ‘모성애적 리더십’, 정세균 대표는 ‘임무수행형 리더십’에 가깝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정치인이 대중을 이끌어갈 책임이 있다는 점을 중요시하는 ‘논리적 수호자형 리더십’이다.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계몽적 리더십’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정운찬 총리는 지적 고귀함과 봉사를 강조하는 ‘지성적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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