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생각해보는 공자의 仁과 禮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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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호 02면

조선 후기에 거센 당쟁(黨爭)을 불러일으킨 예송(禮訟) 탓인지 유교적 질서는 우리에게 부정적이다. 누군가 유교의 덕목을 거론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는 사람이 적지 않다. 노인은 젊은이 위에, 남성은 여성 위에 군림하는 것으로 유교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 퍼져 있는 유교의 이미지는 ‘수구’다. 옛것을 완강하게 지키면서 새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정신적 기형(畸形)으로도 간주한다. 서구 문명을 받아들인 지난 한 세기 동안 유교적 가치는 잊혀지다시피 했다.

그러나 유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 공자(孔子)는 부활하고 있다. 영화 ‘공자’를 국가 차원에서 제작해 유교 진흥의 포석을 깔고 있다. 잊혀진 전통을 복원하면서 공산주의 이념이 희미해진 중국인의 정신세계를 보완해 보자는 취지인 것 같다.

유교는 정치적 덧칠이 가해질 때 딱딱하게 굳어진다. 한(漢)대에 제국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만들어진 삼강(三綱)이 대표적이다. 임금을 신하의, 아비를 자식의, 남편을 아내의 중심축으로 설정했다. 주종(主從)을 강조한 일방적 질서다. 하지만 전국시대를 풍미한 맹자(孟子)는 오륜(五倫)을 내세웠다. 아들과 자식은 친함이 있어야 하고(父子有親), 임금과 신하는 의로써 맺어져야 하며(君臣有義), 부부간에는 구별함이 있어야 하며(夫婦有別), 어른과 아이에게는 차례가 있어야 하고(長幼有序), 친구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朋友有信). 이 다섯 가지 쌍방 관계의 실질을 규정한 ‘친의별서신(親義別序信)’은 일방적인 자리매김이 아니라 상호 소통을 말하는 덕목들이다.

이런 덕목을 이끄는 것은 공자가 말한 인(仁)과 예(禮)다. 사랑과 배려를 뜻하는 인은 ‘친의별서신’을 아우르는 내면적 가치다. 겸손과 양보로 타인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예는 인이 바깥으로 표출되게 이끌어주는 규범이다.

이해타산을 앞세우고, 막말로 상대방의 기를 꺾는 데 몰두하고, 사회 부조리들이 팽배한 요즘, 한국 사회는 ‘어짊과 조화’라는 동양의 전통 가치를 되찾아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선 지난 500여 년간 우리의 인문적 지형을 북돋아준 인과 예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일이 급하다.

21세기는 통섭과 포용의 시대다. 지난 100여 년간 서구 문명으로부터 이식된 민주·자유의 가치 위에 어짊과 조화를 꾀하는 전통가치 체계를 접목시킬 때 한반도는 지구촌 정신문화의 중심이 될 수 있다.

경인년 새해 아침, 조상께 올리는 차례상 앞에서 인과 예의 마음을 가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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