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물 수능 혼란' 시리즈 적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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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벨 평화상 수상, 부시 당선 확정, 수능시험 발표, 금융기관 구조조정, 농어가 부채탕감 등이 크게 보도됐고, 여권 내부 갈등과 국정쇄신 방안이 사설과 칼럼의 소재로 인기를 누린 한 주였다.

'지하철 6호선 철로점거 시위' (16일자 27면)와 '국민은행 노조 은행장 퇴근 막아' (13일자 27면)는 법치의 붕괴현장을 사진으로 생생하게 전달했다.

시평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나' (13일자 7면)는 오로지 대통령의 '결단' 에 의존하는 인치(人治)를 이러한 난맥상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포럼 '청장 살리기, 경찰 죽이기' (14일자 6면)는 불법시위에 대응하는 경찰의 스마일 운동과 무탄(無彈)전술을 직무유기로 혹평했다. 둘 다 여권이 되새겨야 할 뼈아픈 진단이다.

9일자 사설은 과격한 시위에 의해 부채 경감을 관철하려는 농민을 나무라는 한편 부채 경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가 될 것을 우려했다.

부채 경감을 '언 발에 오줌 누기' 로 비유한 지난 11월 23일자 사설과 함께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다.

이번이 마지막 지원이라는 농림장관의 다짐(12월 11일자 17면 인터뷰)에도 불구하고, 부채 경감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 '소비 촉진' 특집 논지 모호

부채 경감의 본질은 사면이다. 사면은 과거와의 고리를 단절해 새 출발을 독려하고, 다수의 정책 순응을 유도하는 데 필요한 '임계집단(critical mass)' 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그 전제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매년 5월 설정되는 '불법무기 자진신고기간' 처럼 연례행사가 되면 사면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채를 상환하지 않더라도 다시 면죄부를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면 이번 조치는 오히려 농어민 부채를 더욱 늘릴 수 있다.

하버드대 교수 로버트 배로는 '최후의 사면' 에 대한 확신을 부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정부의 위약, 곧 사면을 발표한 뒤 잘못을 자진신고한 사람들을 사면하지 않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부채가 경감된 수혜자들이 채무 이행을 다시 태만히 하는 경우엔 특별가산이자를 물리는 조치가 병행돼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 과장된 제목.기사 씁쓸

소비는 경기의 불씨이므로 쓸 돈은 쓰자는 특집기사(11일자 1, 5면)는 깊이가 얕고 논지도 모호했다.

'합리적 기대' 에 따라 행동하는 소비자에게 거시경제를 위해 소비를 늘려달라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분수에 맞게 쓸 데는 씁시다" 는 주장은 어색한 수식어로 인해 앞뒤가 맞지 않았고, 불경기의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는 것처럼 비칠 우려가 있었다.

비슷한 논조를 피력한, 사진이 게재된 6명의 인물 가운데 경제전문가는 한명에 불과했다. 그 전문가의 견해도 구조조정을 통해 불안감을 완화하자는 것이지, 기사의 결론처럼 합리적인 소비를 촉구하지는 않았다.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함인지 모르겠지만 제목이 내용보다 앞서가거나 과장된 기사도 있었다. 네덜란드의 히딩크가 "관중석에서 한ㆍ일전을 참관하겠다" 고 언급한 내용을 보도하면서 '히딩크 한ㆍ일전 지휘봉' (8일자 41면)으로 엉뚱한 제목을 달아 씁쓸했다.

'신마약 밀반입 작년의 370배' (11일자 31면)도 지난해 신종 마약의 적발실적이 미미했던 점을 감안하면 통계적 착시를 활용한 제목이다.

학력을 허위 기재해 말썽을 빚었던 서울경찰청장의 사퇴경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통감하고 자진 사퇴했다" 는 보도(11일자 1면)와 "총리가 주재한 장관회의에서 결론이 내려졌다" 는 보도(같은 날 8면)가 상충돼 진실이 궁금했다.

수능성적 발표에 맞춰 13일부터 특집 '물수능 대혼란' 이 3회에 걸쳐 연재됐다. 시의적절했으나 여전히 최상위권의 우수학생 중심기조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특히 "이번 수능 1점은 학과가 아니라 대학을 바꾼다" 는 표제는 전공보다 학교의 서열을 중시하는 비교육적 편견을 물씬 풍겨 교육개혁에 각별한 열의를 지닌 중앙일보답지 않았다.

성적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느니, 맘에 드는 전공을 찾아 학교를 바꾸는 선택이 현명하지 않을까.

박재완 <성균관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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