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택일 때 동전 던지는 습관, 로마시대 동전 점서 유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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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호 20면

별자리는 미래를 점치는 중요한 수단이다. 김일권 한국학 중앙연구원 교수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자리와 고구려 덕흥리 고분 등의 벽화에 등장하는 사신도 및 별자리를 겹쳐 이미지를 만들었다. [중앙포토]

점(占)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뿌리가 깊다.현 인류의 조상인 크로마뇽인은 별자리를 보고 계절의 변화를 점쳤다고 한다. 기원전 4000년 바빌로니아에서 점술가는 동물의 내장을 보고 앞을 내다봤다. 새의 날갯짓이나 물에 떨어진 기름방울 모양도 바빌로니아의 점술 도구였다. 별자리를 보고 미래를 예견하는 점성학은 고대 서양 학자의 필수 과목이었다. 당시 점성학과 천문학은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철학·과학·수학·의학의 구분이 모호했던 고대 그리스시대만 해도 모든 학자는 별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인간 역사만큼 뿌리 깊은 점의 역사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점성학을 이해하지 못하면 의사가 아니라 바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는 점성학으로 ‘환자에게 흉한 날’을 파악하도록 제자를 독려하기도 했다.고대 로마에선 고추씨를 불 속에 던져 타는 모양을 보고 미래를 예견했다. 로마인은 양자 간 선택을 해야 할 때는 동전으로 점을 쳤다.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앞면이 나오면 길(吉), 반대면은 흉(凶)을 뜻했다. 요즘 운동 경기에서 동전을 이용해 공격과 수비를 가리는 것도 로마시대의 동전 점에서 유래한 것이다. 로마시대엔 점성학이 상류사회의 최고 관심사였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군대를 상징하는 깃발에 황소자리 별 모양을 그려 넣고 『별자리에 대하여』란 책을 쓰기도 했다.

르네상스 때까지 천문학자는 거의 모두 점성가이기도 했다. 천동설을 주창한 그리스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점성학을 집대성해 쓴 책 『사원의 수』는 지금까지 서양 점성학의 교과서로 활용되고 있다. 행성의 궤도와 운동법칙을 밝혀낸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상류층 인사의 미래를 점쳐 주거나 ‘별점 달력’을 팔기도 했다.
동양에서는 귀갑(거북의 껍데기)이나 소뼈를 불에 태워 갈라지는 형상으로 길흉을 점쳤다. 귀갑이나 짐승의 뼈를 사용한 복점은 신석기시대부터 행해졌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왕조인 은나라(또는 상나라, 기원전 1600~1046년)는 여기에 문자를 새겼다. 바로 한자의 가장 오래된 형태인 갑골문자(甲骨文字)다. 갑골문자는 대부분 왕실의 길흉을 점친 기록이다.

한반도의 경우 상고시대에 소를 잡아 발톱을 보고 전쟁의 승패를 미리 점치는 등의 복술이 행해졌다. 당시 복술은 국민을 통제하고 집권층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쓰이는 정치 수단이었다. 이 때문에 삼국시대에는 사무(師巫ㆍ고구려), 무자(巫子ㆍ백제), 일관(日官ㆍ신라)을 둬 점술을 국가에서 관장했다. 고려시대에는 동물점·식물점 등이 나타났고 조선시대 들어서는 택일점·사주점·토정비결 등이 보편화됐다.

유학이 지배하는 조선시대에도 점술은 어엿한 학문의 한 분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는 ‘명과’라는 분야가 있었다. 중인이 보는 잡과 중 하나로, 점술을 뜻한다. 조선은 과거시험을 통해 역술가를 뽑았으며 이들이 왕과 왕비가 동침하는 날을 택일하거나 집터와 묘터를 정했다. 충무공 이순신도 점을 봤다. 그의 친필 일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갑오 9월 1일 병자일. 이른 아침에 세수하고 조용히 앉아 아내의 병세에 대해 점을 쳤더니 ‘중이 환속하는 것 같다’는 괘를 얻고, 다시 ‘의심하다 기쁨을 얻은 것과 같다’는 괘를 얻었다.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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