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칩거후 '셋과 둘…' 펴낸 김지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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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시인 김지하는 문제적 인물이다. '구름 똥 누고 다니는 신선' 이라는 비아냥도 옛말이고, 그를 마뜩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은 한 술 더 뜬다.

입만 열면 상고사를 들먹이고 단군을 말하니, 왕년의 '싸움 닭 김지하' 가 '늙은 쇼비니스트' 로 변한 것 아니냐고 혀를 찬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그의 책을 정독하지 않은 이들의 사시(斜視)다.

차제에 주변에서 들어본 김지하에 대한 균형잡인 표현을 밝히자면 이렇다. "아, 김지하 정도라면 한번 우주를 삶아먹고 싶지않겠어요? 아직도 그가 애면글면 뭔가 모색하고 있다면, 한번 그의 행보를 느긋하게 지켜 봅시다. "

이런 마음으로 살펴본 신간 '셋과 둘, 그리고 혼돈' (솔과 학.7천5백원)은 지난해 실천문학사를 통해 낸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 의 연장선에 서 있다.

논의의 진전이 없어 다소 아쉽지만, 신간에는 여전히 귀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지난해 그가 합류했던 한문화운동측과 결별을 하면서 1년여 은둔 이후 첫 신간이기 때문이고, 또 아직도 '엄청난 덩어리' 와 씨름을 하는 김지하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른다.

엄청난 덩어리란 무엇인가. 예전의 민중 주체 변혁론.생명사상.환경운동을 끌어안으면서 이를 민족 전통사상과의 관련 속에서 새 차원의 문화운동 한 판을 벌이자는 것이다.

문제는 문화운동의 미학적 토대 다지기가 관건이고, 그것은 극대치의 영성(靈性)적 울림을 갖는 율려(律呂)운동으로 요약된다.

율려운동이란 알고보면 간단하다. '천지 기운이면서 천지의 마음인 우주적 삶' 의 기틀을 바꿔보자는 말이고, 그것이 사회변혁의 시작이자 으뜸이라는 얘기다.

'예감에 가득찬 숲 그늘' 에서 김지하는 그것을 우주사회적 공공성 내지 천지공심(天地公心)이라고 언급했지만, 신간에는 약간 구체화된다.

동학 용어로 각비(覺非)라고 표현한다. '인간의 잘못된 역사를 우주 생성에 기초해서 깨닫는 것' (41쪽)이라는 것이다.

이런 명제에 공허한 정신주의 혐의를 들이대면 실수하는 것이다. 서양 철학의 후기 구조주의의 보편적 지평과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또 있다. 19세기 수운(水雲).증산(甑山) 등 민중운동사의 재평가를 김지하 식으로 할 수 있다는 발견 때문이다.

단군과 신화에 대한 관심 역시 지금 움트고 있는 고대의 부활과 같은 맥락일 수도 있다. 학문의 잣대로 재단하면 김지하는 '구름 덩어리' 일 수도 있지만, 암시를 얻는 텍스트로 보자면 여전히 매력이 있다.

최근 만난 김지하는 이렇게 말한다. 본래 추진하려던 율려극 '신시(神市)' 공연도 다른 방식으로 추진하려 노력 중이고, 파미르 고원에 대한 고고학적 탐사 역시 아직은 죽은 프로젝트가 아니라고.

▶사족〓헌데, 천하의 김지하라면 좀 더 느긋해질 필요가 있다. 내년이면 갑년(甲年)인데, 책을 보면 그가 아직도 너무 숨이 가쁘다.

그것은 무언가 구체적인 성과와 노출심리에 따른 조바심일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당분간 익명으로 남는 것을 각오하고, 자기 토대를 다지는 것이 외려 빠른 길일 수 있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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