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살 느티나무 고향이 그리웠나 서울살이 시름시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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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서울 반포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 심은 1000년 묵은 느티나무가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건설사 측은 추위를 막기 위해 주위에 방풍 천막을 둘렀다. 왼쪽 사진은 지난해 7월 푸름을 잃지 않은 느티나무의 모습. [김성룡 기자], [중앙포토]

11일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단지 안 정원. 약 10m 높이로 둘러쳐진 녹색 천막 앞 팻말에는 ‘천년나무가 새로운 환경에 조속히 적응하여 활착될 수 있도록 특별보호관리 중입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천막 안에는 ‘천년나무’로 불린 1000살짜리 느티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 천년나무가 ‘투병 중’이다. 입주민들은 나무의 쾌차를 기원하며 천막 안의 나무를 간간이 들여다봤다. 지난해 6월 이곳에 이식된 나무는 아파트 단지를 대표하는 명물이었다. 시공사는 “경북 고령에서 1000년 묵은 나무를 10억원에 구입했다.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새로운 1000년의 징표가 될 것”이라고 홍보했다. 입주민들에게도 자랑거리였다. 아파트 건물 사이에 솟아난 키 4m, 지름 1.5m의 아름드리 고목이 세련된 첨단 아파트에 자연미를 더해줬다. 하지만 나무는 이식된 뒤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나뭇잎 색깔이 변하고 가지가 힘을 잃었다. 병세를 감지한 시공사는 각종 방법으로 치료에 나섰다.

먼저 나무줄기에 포도당 등 각종 영양 성분이 함유된 주사를 놓았다. 지난해 11월께 녹색 천막이 설치됐다. 바람에 의한 체온 저하와 수분 증발을 방지하기 위한 방풍막이었다. 나무의 몸통은 깁스를 한 것처럼 헝겊으로 둘러쌌다. 토양의 기온 저하에 따른 뿌리 손상을 막기 위한 보온 덮개였다. 시공사 측은 “여름철에는 햇빛 가리개를 설치해 연약한 잎의 화상을 방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풍에 대비해 간이 병풍막도 설치될 예정이다.

천막 한쪽에는 작은 구멍이 뚫렸다. 나무의 안부가 궁금한 입주민들이 만든 것이다. 지금 나무는 잔가지는 거의 없는 통나무 같은 모습이 됐다. 몇 개 남지 않은 가지의 끝은 절단된 듯 뭉툭했다. 한 주민은 “우리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이사 온 나무가 자신의 건강은 못 지키는 것 같아 안쓰럽다”고 말했다.

시공사 관계자는 “이식 이전부터 수령(樹齡)이 많은 데다 밑동에 큰 구멍이 나서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이식 이후 더 나빠져 특별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식 후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 나무는 경북 군위 지역에 군위댐이 설치되면서 수몰 위기에 처했다가 고령의 개인에게 판매됐다고 한다. 시공사 측은 “군위에서 고령, 고령에서 다시 서울로 이식된 경험이 나무를 더 힘들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아파트의 한 주민은 “1000년이나 자연의 풍광 속에 살아온 나무가 인간들에 의해 아프게 된 것 같아 안타깝다”는 글을 아파트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렸다. 사람들의 이기심이 천년나무에 상처를 줬다는 것이다. 산림과학원의 김선희 박사는 “남부 지방의 나무를 추운 중부 지방으로 옮기면 낮은 기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동해를 입게 된다”며 “수령이 오래된 나무일수록 이식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말했다.

글=송지혜 기자 ,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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