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특별기고] "반달곰 멸종의 길 가지 않게 욕심 버려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최근 거의 멸종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던 반달가슴곰이 지리산 일대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곰이 설악산에서 마지막 나타났던 것이 17년 전의 일이라니 생태계에 웬만큼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잡식성인 곰은 봄에는 어린 나뭇잎이나 도토리.버찌를, 여름에는 풀.벌.개미를, 가을에는 도토리와 밤.머루.다래 등을 먹는다.

그러는 동안 열매의 씨앗을 여기저기 배설해 종자를 퍼뜨리게 해주고 나뭇가지를 꺾어 나무가 다음해에 열매를 많이 맺게 함으로써 산림생태계의 멋진 정원사 역할을 하고 있다.

곰을 두고 생태계를 대표하는 '깃대종' (한 지역의 상징적 동.식물종)이라고 하는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

그런데 우리 민족신화의 주인공이자 산림생태계의 깃대종인 곰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유는 한 둘이 아니다. 국토의 산지사방에 큰 길이 뚫리고, 자동차가 매연을 뿜으며 질주하게 되자 곰의 서식지는 마구 훼손됐다.

그보다 더 심했던 것은 무차별 사냥이다.

일제시대에는 조선총독부가 '해수구제(害獸驅除)' 의 미명 아래 해마다 남획을 계속해 1915년부터 42년까지 1천9백여마리가 죽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웅담(熊膽)에 대한 그릇된 인식으로 기록에도 없이 사라져간 곰의 숫자는 10여배에 이를 것이라고 하니 곰의 씨가 마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웅담이 강장제로 알려지면서 1백g도 되지 않는 웅담을 얻기 위해 우리는 2백~3백㎏의 곰을 무참히 도살했고 세계적으로 웅담의 최대 소비국이란 오명을 남겼다.

그러나 웅담 속의 '우루소데속시콜린산(UDCA)' 성분은 현재 인공적으로도 합성이 가능하다.

게다가 웅담은 간질.소염 등에는 일부 효과가 있지만 속설과 달리 정력에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반달가슴곰은 현재 중국에 2만마리, 일본에 1만마리 이상이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설악산에 곰이 많이 살아 백담사 가는 길에 새끼 곰이 등산객을 반겼을 정도라고 한다.

우리 어린 시절 동요 속에 살아 있던 따오기가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고, 호랑이.표범.늑대.여우가 전설 속의 존재로 잊혀지고 있는 것처럼 곰의 존재도 사라져가고 있었던 터라 특히 반가움을 느낀다.

어쩌면 이번 지리산에서 발견됐다는 반달가슴곰은 이 땅에 존재하는 마지막 개체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반달가슴곰을 보호하는 데 있어 최대의 걸림돌은 참으로 극성스런 밀렵이다.

전국적으로 밀렵꾼의 숫자는 1만6천명을 웃돌고 지하시장 규모는 1천5백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지난 2월 한.중.일 환경장관회의 때 중국 셰전화(解振華)장관은 반달곰 밀렵꾼 두명을 사형에 처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그래서 지리산에는 반달가슴곰 수호특공대로서 밀렵단속반이 투입됐고 이 곰이 서식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올무 등 불법 엽구(獵具)를 철저히 수거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속보다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다.

수백만년 이상 이 땅에 우리와 함께 살아온 동물가족은 우리와 함께 살아 남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고 슬퍼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땅의 동물이 하나 둘 멸종돼 모두 사라지게 된다면 인간도 영혼의 외로움으로 인해 끝내는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김명자 <환경부 장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