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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그곳에 가면 세월이 보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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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에 가면 꼭 성벽에 올라볼 일이다. 성벽 위에 서서 고만고만한 키의 초가지붕을 내려다볼 일이다. 바로 그 키가 우리 민초의 삶의 높이다. 전남 순천 낙안읍성에서. [김상선 기자]

민속마을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되바라진 관광지로 전락한 민속마을, 문화재적 가치는 있지만 아직 정비가 덜 돼 막상 감흥은 떨어지는 민속마을, 그리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면서도 문화재적 의의를 잘 간직하고 있는 민속마을.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물론 세 번째 경우다. 이 경우에 해당된다고 여겨지는 전국의 민속마을 네 곳을 소개한다. 마을마다 사연이 다르고 의의가 다르다.

글=손민호·김영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민속마을의 본령 안동 하회마을

풍산 류씨 씨족마을이다. 풍산 류씨가 하회마을로 이주한 것은 고려 말이고, 현존하는 가옥은 모두 124호다.

하회마을은 한국을 대표하는 명당이다. 낙동강이 마을을 태극 모양으로 크게 휘돌아 감는다 하여 하회(河回)란 이름이 붙었다. 마을 뒤로는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린 화신이 버티고 서 있고 마을과 낙동강 사이에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낙동강 건너에는 흰 절벽이 가로막고 있다.

풍산 류씨 문중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단연 서애 유성룡(1542~ 1607) 선생이다. 임진왜란 때 이 충무공을 등용한 주인공으로, 서애가 임진왜란을 겪고 난 뒤 남긴 『징비록』은 국보로 지정돼 있다. 서애(西崖)의 호는 서쪽 벼랑이란 뜻이다. 하회마을에 가봐야 그 까닭을 알 수 있다. 서애의 집 충효당(보물 414호)에서 바깥을 바라보니 낙동강 너머 절벽이 보인다. 서애는 그 절벽에 자신을 빗댔다.

하회마을은 한 해 80만 명 이상이 찾아오는 대표적인 관광지다. 외국인 관광객도 자주 눈에 띄었고 관광객이 참여하는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하나 민속마을의 품격은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 하회마을 안에도 민박은 있지만 마을 입구에서 차량을 통제하고 외부 상인의 진입을 막아 소란을 피하고 있다. 주말에는 하회별신굿탈놀이 공연도 볼 수 있다. 하회마을에도 교회는 있다. 기와지붕을 얹은 교회 모습이 이채롭다.

여행 정보=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서안동IC에서 빠져나오면 하회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 따라 15㎞를 달리면 하회마을이다. 주차비 2000원, 입장료 2000원. 하회마을(www.hahoe.or.kr) 관광안내소 054-852-3588.

가장 큰 민속마을 경주 양동마을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두 문중의 씨족마을이다. 현재 150여 호가 남아 있으며 200년 넘은 집이 54호나 된다. 씨족마을은 한 개 성씨로 형성되는 게 보통인데 양동마을은 인척 관계의 두 가문이 500년 넘도록 한 마을을 이루고 있다. 현재 전국 민속마을 중 가장 크다.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한 상태다.

양동마을도 손꼽히는 명당이다. 아침 햇살이 마을에 골고루 잘 내려앉는다. 마을 앞으로 형산강 지류 안락천이 흐르고 안락천 건너에 드넓은 안강들이 있다. 우재 손중돈(1463~1529) 선생의 고택이 보물 442호 관가정(觀稼亭)인데,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곳이란 뜻이다. 관가정 마루 위에 서니 안강들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양동마을을 대표하는 위인은 유학자 회재 이언적(1491~1553) 선생이다. 퇴계·조광조 등과 함께 동방 5현으로 꼽히며 성균관 문묘에 배향돼 있다. 회재의 외가가 월성 손씨 집안이다. 회재 유적은 회재가 말년을 보낸 독락당에 더 많이 모셔져 있다. 양동마을에서 차로 10분 거리다.

월성 손씨 종택이 서백당인데, 여기에 얽힌 전설이 재미있다. 위인 셋이 나오는 집터인데 여태 두 명이 나왔단다. 아직 위인 한 명이 남아 있어 출가한 딸이 친정에서 해산하는 걸 막고 있단다. 아직 정비가 덜 돼 있어 해설이나 체험 프로그램이 약하다. 대신 옛 정취는 훨씬 강하다.

여행 정보=대구~포항 고속도로를 타고 포항IC에서 나와 대구·영천 방향으로 10분쯤 달리면 양동마을 입구가 보인다. 입장료가 없고, 동네 어귀 주차장에서 약 1㎞ 걸어 들어와야 한다. 마을에서 민박도 가능하다. 경주시 문화관광과 054-779-6395.

천오백 년 역사 순천 낙안읍성

“사농공상 낙안이요”라는 호남가 한 소절에 천오백 년 읍성의 내력이 그대로 담겨 있다. 성 안에서 사는 민속학자 송갑득(64)씨는 “반가를 뺀 중민 이하 양민, 하급 관리부터 농부·대장장이 등 서민이 모여 살던 곳”이라고 낙안읍성을 설명한다.

오늘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성 안 108가구 중에서 기와집은 한 채도 없다. 성곽 위에서 내려다보는 초가 지붕은 어느 집 하나 튀지 않고 평등하다. 만민의 자잘한 삶이 이 낮은 초가 아래서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성 안에는 짚물·대장간·도자기·한지·목공예 등 14개 체험장이 있다. 전국 7개 민속마을 중 가장 많고 거의 매일 진행된다. 짚물 공예 초가에서 만난 장영현(74)씨는 “예전엔 생활이었지만 요즘은 관광 상품이 됐다”며 “지금은 성 안에서도 두 명밖에 안 남았다”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작은 사랑방에는 요즘 보기 드문 맷돌방석·짚항아리·짚꽃병이 벽마다 빼곡히 걸려 있다. 장씨는 “체험장에 사람이 있든 없든 소일 삼아 맷방석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열흘을 짜야 겨우 완성하는 맷돌 방석은 하나에 9만원이다.

낙안읍성은 성곽 1410m를 비롯해 민속 경관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성읍촌이다. 1983년 사적지로 지정됐고,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민속마을이 됐다. 낙안읍성은 예부터 돌·소리·술이 많아 삼다(三多)의 고장으로도 불렸다. 지천의 돌은 성곽을 이뤘고, 더덕으로 만든 사삼주가 여전히 성내 장터에서 팔리고 있다. 가야금 병창 등 소리 체험은 국악교실 초가에서 주말마다 진행된다.

여행 정보=호남고속도로 승주IC에서 나와 낙안읍성 방향으로 20분 거리. 입장료 2000원. 낙안읍성(www.nagan.or.kr) 사무소 061-749-3347.

한과로 거듭나는 고을 아산 외암마을

조선 선조 때 예안 이씨가 정착하면서 이룬 집성촌이다. 지금도 80여 가구 주민의 절반이 예안 이씨다. 충청 지방 고유의 격식을 갖춘 반가의 고택과 돌담, 정원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동네 어귀 민속관에 들어섰다. 민속관 문간 부뚜막에 걸린 무쇠 솥에서 허연 김이 연방 뿜어져 나온다. 아낙네 둘이 솥에 담긴 엿기름 물을 달여 조청을 고는 중이고, 한켠에선 조청을 바른 한과에 고물을 묻히고 있다.

“한번 맛보실래요? 생각보다 잘 됐어요.” 아낙들이 갓 만들어낸 한과를 집어 준다. 외암마을 아낙들은 설 명절을 앞두고 처음 전통한과에 도전했다. 몇 해 전부터 방문객을 대상으로 쌀강정 체험 행사를 해왔는데, 올해는 쌀강정에서 한과로 업그레이드를 시도한 것이다. 주민 김순화(45)씨가 늘어놓은 한과 예찬이다.

“쌀강정은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잖아요. 한과는 직접 해보니까 손이 정말 많이 가요. 한과는 쪼갰을 때 속이 거미줄처럼 엮인 것이 좋대요. 모양도 예뻐야 하지만 겉보다 속이 더 중요한 거죠.”

이장 이규정(47)씨는“초가 지붕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지 않겠느냐”며“올해부터 된장·고추장 등 장류와 한과를 만들어 수익 사업도 벌일 계획“이라고 했다. 민속마을의 맥을 잇기 위해 부단히 변화를 시도하는 모습이 왠지 애틋하다. 마을보존회는 설 명절 뒤에도 한과 체험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여행 정보=서해안고속도로 서평택IC로 나와 온양온천 방면으로 39번 국도를 타고 40분 거리. 입장료 2000원. 외암 민속마을(www.oeammaul.co.kr) 041-540-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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