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영희 칼럼

케리 당선을 바라는 한국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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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D-18을 맞은 오늘 현재 미국 대통령 선거의 판세는 '초박빙'이나 '백중지세' 같은 표현도 무색할 만큼 어금버금한 접전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의 존 케리는 그들에 대한 지지도를 묻는 조사기관에 따라 오차범위 안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케리는 이라크 사태라는 결정적인 부시 공격자료를 가지고도 승기(勝機)를 못 잡고 오히려 숨가쁘게 부시를 뒤쫓고 있다.

*** 케리, 호재 갖고도 승기 못 잡아

미국 정부 조사단이 전쟁 전의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는데도 부시는 큰 상처를 입지 않았다. 부시는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구실로 세계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를 공격했기 때문에 조사단의 결론은 부시에게서 전쟁의 명분을 완전히 박탈한 것이다. 그런데도 케리는 부시를 추월하지 못했다.

케리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된 국내문제를 주제로 한 어제의 TV토론이 케리에게 판세를 뒤집는 계기가 되지 않는다면 투표일까지 선거전은 안개 속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실업과 의료제도, 교육과 환경과 재정적자 같은 국내문제에서 부시는 약점투성이다. 두 후보가 마지막 토론에서 부동층의 마음을 얼마나 사로잡았는지는 하루 이틀 더 조사와 분석을 해봐야 신뢰할 만한 결과가 나온다.

미국 현지의 이런 백중지세와는 상관없이 한국인들은 압도적으로 민주당 케리의 당선을 희망한다. 이달 초에 한국의 중앙일보를 비롯한 세계 10대 신문들이 공동으로 실시한 '미국에 대한 인식'조사결과를 보면 한국인의 68%가 케리가 당선됐으면 좋겠다고 응답했고 부시의 재선을 바라는 한국인은 18%에 그쳤다. 연령별로는 20대의 86%, 30대의 83%, 40대의 77%가 부시를 나쁘게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다수의 한국인들이 부시를 싫어하는 이유는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부시는 2001년 취임 후 북한에 대한 포괄적인 정책을 제시하기도 전에 북한을 이란과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악의 축에 드는 나라는 대화보다는 파괴의 대상이다. 부시는 실제로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위협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부시는 한반도에서 "큰 사고 칠" 위험인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케리는 어떤가. 북한정책에 관한 부시와 케리의 기본적인 차이는 부시는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케리는 북.미 대화에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북.미 대화에 찬성하느냐 지지하느냐는 방법상의 문제지만 북한이 중국의 압력에 밀려 6자회담에 참석하면서도 핵문제는 기본적으로 북.미 협상으로 해결할 문제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 한 부시의 6자회담 방식은 비현실적이다. 그런 이유로 6자회담은 사소한 장애물에도 자주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케리는 지난달 첫번째 토론에서 북핵을 부시 외교의 실패 사례로 공격했다. 케리는 부시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사이에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을 추방하고 핵무기개발 프로그램을 재가동하여 4개에서 7개의 핵무기를 만들어 더욱 위험한 나라가 됐다고 주장했다. 케리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북한이 실제로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지는 확인이 안 되지만 8000개의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언제든지 무기를 만들 준비를 갖추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부시의 방식으로 핵문제 해결이 무한정 늦어지면 북한은 핵무기 제조라는 마지막 저지선을 넘을 위험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 부시 '사고 칠 인물'로 비춰져

우방의 대통령 선거에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나 반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히는 것은 조심스럽다. 그러나 적어도 북핵문제 해결에 관한 한 케리의 양자회담 방식이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의 한반도 분위기와 방향을 같이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꼭 젊은 층이 아니라도 다수의 한국인이 부시의 재선보다는 케리의 당선을 바라는 것은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케리에 대한 환상은 금물이다. 케리에게 북핵을 단숨에 해결할 요술방망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케리에 대한 기대는 그가 클린턴의 북.미 대화를 통한 포괄적인 북핵 해결 방법을 계승할 것이라는 수준에 맞추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