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누가 경제를 불안케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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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주요 경제부처 장관들이 함께하는 인식이 하나 있다고 한다.

경제가 나빠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를 언론이 실제 이상으로 크게 보도함으로써 더 나빠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요즘 신문을 보는 일반 독자들로부터는 다음과 같은 소리를 종종 듣는다.

*** 정치가 不安심리 풀어야

자고 일어나면 무슨 사고다 사건이다하고, 신문을 펴들면 정치권 싸움에 이익집단들의 시위요, 들리느니 배후 의혹에다 인사 잡음이니 이젠 아예 신물이 난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다 좋은 소리 듣는 지면을 만들 수만 있다면 오죽 좋을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가다간 죽도 밥도 안되게 생겼으니 어찌하랴. 최근의 경기 하락세에 심리적 불안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성장세가 꺾이는 폭보다 소비 증가세가 더 큰 낙차를 보이며 둔화되고 있다.

올 3분기와 전분기를 비교한 낙폭이 성장률은 0.4%포인트였으나 민간 소비 증가율은 3.2%포인트나 됐다.

소비심리가 지나치게 쫄아드는 이같은 현상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초와 비슷하다. 기업들의 투자심리도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기의 불씨' 라고 할 소비와 투자가 식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통계청이 발표하는 여러 지표, 민간.관변 연구소들이 짚어보는 각종 통계들이 최근에는 죄다 이런 식이다.

그런 통계치들을 그냥 '증가세가 둔화된다' 고 덤덤하게 전하지 않고 '급랭(急冷)한다' 고 보도한 언론들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또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대번에 '붕괴' 니 '공황' 이니 하는 자극적인 제목을 뽑는 일부 언론도 생각해 볼 점이 있다.

그러나 소비.투자심리를 지나치게 위축시킨 것으로 말하자면 더 큰 잘못들이 훨씬 많다.

근본적으로는 경기 후퇴의 낙폭을 줄일 수도 있었는데 더 키워놓은 정부 탓이 크다.

1998년 마이너스 6.7% 성장 이후 99년에 10.7%의 성장을 이뤘을 때 정부는 다음에 대비했어야 했다.

어차피 경기가 한번 또 꺾일 터이니 W자형 경기변동의 진폭(振幅)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그러나 브레이크 없이 그냥 가속 페달을 밟았고 결과는 급격한 주가.경기변동과 그에 따른 불안감 확산이었다.

또 구조조정은 경기가 좋을 때 해야 하는데 좋은 세월 다 보내고 이제 경기가 내려앉는 마당에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하려니 불안감이 훨씬 커졌다.

왜 그랬을까. 정치 일정 때문이었다.

올해의 총선, 남북관계 개선의 정치 일정 속에서 국정의 중심이 이동했고 합당한 구조조정과 거시정책은 뒤로 밀렸다.

"다시 올 수 없는 기회였던 지난 3년을 우리는 헛되이 보내고 말았다. "

이처럼 허탈하고 자조적인 반성에 동조하는 경제부처 공무원들이 늘고 있음을 청와대 경제수석은 곧이 곧대로 전해야 한다.

"내년 상반기까지가 구조조정의 마지막 기회다. "

요즘 정부가 강조하는 대목인데 왜 내년 상반기까지인가. 내년 하반기부터 대선 분위기에 휩싸이면 다시 경제고 뭐고 뒷전이라는 것인가.

"외환위기 직후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자. " 정부가 호소하지만 그리 쉽게 될 것 같지 않다.

당시엔 자발적으로 금을 모았지만 이제는 이익집단들이 무리한 요구를 서슴지 않고 있다.

야당도 갈수록 더하다.

농민.공기업노조 등의 집단행동이 있으면 여당보다 한술 더 치고 나가 정부를 구석으로 몰고 있다.

*** 경제 살리는 정당이 이겨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이런 이야기들을 다시 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식는 경기에 또 찬물을 끼얹고자 함이 아니다.

실제 이상의 불안감을 잠재우고 초심을 돌이키게 하려면 누구나 다 아는 이런 이야기들을 언론이 짚기 전에 정부.여야가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함께 앞장 서야 한다.

지금의 경제는 심리적 요인이 크므로 정치에서부터 풀어나가는 것이 상책이다. 컴퓨터로 모델을 돌려서는 풀리지 않는 게 지금의 경제다.

여든 야든 경제를 위해 먼저 모범을 보이는 쪽이 다음 선거에서 이기리라고들 누구나 이야기하는데 여야 수뇌부는 무슨 딴 전략 짜기에 골몰하고 있는가.

내년 경기가 식는다 한들 5%대의 성장은 된다. 1980년 '서울의 봄' 때나 1998년 외환위기 직후의 마이너스 성장보다는 훨씬 낫다.

정치가 경제를 먼저 걱정하면 국민들은 다시 '한다' .

김수길. 경제담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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