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애정의 조건' 뜻밖의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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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김종창 PD(左)와 주창윤 교수. 이들은 ‘애정의 조건’의 주제를 ‘조건 없는 애정’으로 결론내렸다.

방송가에서 시청률 30%를 넘기면 '대박'으로 꼽는다. 40%까지 넘기면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여겨진다. 지난 10일 KBS-2 TV 주말드라마 '애정의 조건'이 시청률 45.4%로 종영한 기록은 여러모로 의외의 현상이다. 주말드라마의 퇴조 추세가 두드러진 가운데 '여자의 과거'같은 복고풍 소재가 히트하리라 예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애정의 …'을 연출한 KBS 김종창(41) PD와 서울여대 언론영상학과 주창윤(42)교수가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대화는 무려 10시간 동안 이어졌다.

◆ "사회 모순 꼬집고 싶었다" =주 교수는 "통속적인 소재를 사회 이슈가 되도록 세련되게 포장했다"며 성공 요인을 짚었다. '애정의 …'안에는 혼전동거.외도.고부갈등 등 가족 문제가 총망라돼 있다. 주 교수는 "시청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드라마"라고 평가했다.

전작인 '노란손수건'(2003년)으로 호주제 문제를 부각시켰던 김 PD는 "가부장적 문화에서 억압받는 여성의 모습을 그려 그 모순을 꼬집고 싶었다"고 밝혔다.

*** 시청자에 생각할 거리 제공

하지만 혼전동거 문제로 고통받는 은파(한가인 분)의 모습을 통해 상당수 시청자들이 도리어 혼전순결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김 PD는 "원래 의도와는 다른 반응"이라고 말했다.

'애정의 …'의 성공에는 연기자들의 역할도 컸다. 김 PD는 특히 한가인의 노력을 높이 샀다. "처음엔 눈물 한번 흘리는데 30분이나 걸리더라고요. 그런데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나중에는 자동으로 눈물을 흘려냅디다."

스타로 떠오른 송일국(장수 역)도 원래 캐스팅 1순위는 아니었다. 다른 연기자들이 "중간 투입은 싫다"며 고사한 배역을 송일국은 5분 만에 승락했다. "연기력이 탄탄한 숨은 보석이었다"는 게 김 PD의 평가다.

◆ "치솟는 몸값, 열악한 제작환경"=제작환경이 어렵기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데려온 톱스타에게 제작비 상당부분이 빠져나가 비용 압박이 심했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간접광고가 들어왔다. 김PD는 "시청률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간접광고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주 교수는 "연예기획사에 좌지우지되는 제작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 PD는 지난달 방송위원회로부터 '일반권고'를 받았다."촬영할 때 오토바이에 피자집 로고가 붙어있는 걸 못 봤지요. 재촬영할 시간은 없는데 꼭 필요한 장면이니 어떡합니까."

비용을 절감하려고 야외촬영 횟수를 주2회로 줄이기도 했다. 일당 4만원인 스텝들의 수입이 반토막이 났다. 밤샘 때도 라면으로 야식을 때워야 했다. 보다 못한 김 PD의 부인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날랐다. 봄.가을에는 육계장, 여름에는 김밥을 한번에 60인분씩 들고 왔다.

◆ "시청자 눈치 보지 말아야"='애정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한회 평균 600여건의 시청자 의견이 올라왔다. "이를 대부분 다 읽어본다"는 김 PD는 "극 전개에 참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시청자들의 요청에 따라 차인표 대신 안재욱이 최진실과 맺어진 '별은 내 가슴에'(1997년)부터 시청자가 '또 하나의 연출자'로 부상했다"고 분석했다.

*** 시청률 굴레서 벗어나야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시청자들의 눈치를 보는 현상은 경계했다. 주 교수는 "시청자 구미에 맞춰 '흥행코드'를 이것저것 갖다 쓰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김 PD도 "재미가 없더라고 소외계층을 다루거나 사회 이슈를 부각시키는 '필요한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1주일동안 지상파 3사에서 30여편의 드라마를 내보내는 것은 지나친 장르 편중현상"이라며 "드라마 편수를 현재의 절반 정도로 줄여야 한다"는 주 교수의 말에 김 PD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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