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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빈 칼럼] 해는 저물고 갈길은 멀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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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해방 직후, 목포상고와 송정리공고 학생들간에 패싸움이 벌어졌다. 주먹 싸움이 학교 무기고를 헐어 총격전 직전상태로 치닫는 위태로운 순간이었다.

그때 사이렌을 울리며 소방차가 들어오고 소방차 위에 올라선 한 미남 청년이 학생들을 상대로 일장 연설을 시작한다.

*** 시대착오적 家臣 내분

나라가 해방된 이 마당에 같은 민족끼리, 그것도 같은 젊은 학생들끼리 학교문제로 피를 흘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해방된 조국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 여러분의 선배로서 호소한다. 지금 당장 무기를 버려라. 그리고 화해하라는 요지의 연설이었다.

싸움은 끝났다. 모두가 머리를 숙이고 선배를 우러러봤다. 목상 복싱선수 권노갑은 선배 김대중을 이렇게 만나 평생을 그의 그림자처럼, 왼팔처럼, 버팀목처럼 의리와 충성심으로 몸바쳐 헌신하게 된다. (권노갑, '누군가에게 버팀목이 되는 삶이 아름답다' 에서)

남녀간 사랑처럼 의리와 충성으로 뭉친 남아간 굳은 관계도 아름답다. '삼국지연의' 의 도원결의편은 젊은이들에겐 어떤 러브 스토리보다 감동적이다.

그러나 지금 그 의리와 충성으로 뭉친 도원결의가 격렬한 도전을 받고 있다. 그것도 적이 아닌 동지들로부터, 날아온 돌이 박힌 돌을 뽑으려는 내분이 민주당 내에서 일고 있다.

어떻게 얻은 정권인데, 키워주었더니 이럴 수가 있느냐 하는 탄식과 공천과 인사를 좌지우지하며 무슨 사건만 터졌다 하면 여권 실세론이 등장하니 후퇴하라는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 왜 이런 사태가 생겨나는가.

언론인으로서 정말 쓰고 싶지 않은 용어가 '가신(家臣)' 이다. 일본 봉건제후 시절의 용어를 우리가 21세기에도 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그만큼 지금 벌어지는 민주당 내분은 조선왕조에도 없던 시대역행적 난장판이다. 그런데 이 가신이라는 용어가 이른바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에 거듭 살아나 나라를 어지럽히고 국민을 슬프게 하고 있다.

가신이란 의리와 충성을 서약한 일본 무사집단의 꼬붕(子分)과 오야붕(親分)관계다. 양부.양자 사이다.

공적 관계가 아닌 사적 관계다. 상통관계가 아닌 일방관계다. 협조관계가 아닌 복종관계다.

유사한 형태는 일본만이 아닌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집단이나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朱元璋)집단에도 있었다.

거리의 협객들을 모아 창업을 일군다. 그러나 창업 후에는 예외없이 이들 가신을 버린다. 사적 관계를 공적 체계로 전환하기 위해선 불가피한 조처다.

외딴 성(城)을 넘겨주고 먹고 살 식읍(食邑)을 준다. 뛰어난 가신일수록 빨리 제거한다. 오야붕의 강.약점을 너무 잘 알고 그의 치부까지 낱낱이 알기 때문이다.

우리 조선조 또한 붕당으로 날이 새고 진 왕조였다.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를 권력암투 속에서 잃고 왕위에 오른 정조(正祖)는 시파(時派).벽파(僻派)로 갈라진 정권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통합론을 역설한다.

그중 하나가 그의 의리론이다. "무릇 의리란 일을 함에 합당하고 마땅하며 조리가 밝게 있는 것" 이라 정의했다.

의리를 무기로 남에게 칼을 씌우고 의리라는 당의(糖衣)를 입혀 당리당략적 파쟁을 일삼는 벽파의 보수 심환지(沈煥之)를 겨냥한 경고였다. 당파간 갈등을 해소하고서야 정조는 조선후기 르네상스라 할 진경문화를 창출한다.(정옥자, '정조의 수상록-일득론연구' 에서)

*** 사사로움에 묶여서야

의리란 좋은 것이다.2천년 전 중국에서도, 2백년 전 한국에서도 의리를 중시했다. 그러나 그 의리는 종적인 사적 관계가 아닌 횡적인 공적 관계라야 하고 음험한 마피아적 의리가 아닌 이성적.공개적 의리여야 함을 역사가 누누이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이 역사의 가르침을 지난 정권에서도 무시했고 그 폐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야 할 지금 정권에서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은 어인 일인가.

잘못된 의리를 앞세워 국정을 농단하고 잘못된 의리에 묶여 사사로움을 떨치지 못한다면 지도자가 될 수 없다.

가족과 가신에 의해 움직인 나라나 기업이 창업을 할지는 몰라도 수성(守成)을 할 수는 없다. 왕자의 난이나 기업의 후계다툼 모두 지도자가 사적 관계에 연연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병폐다.

정조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왕노릇을 즐기지 않았다. 하루 하루를 살얼음 밟듯 하루가 무사히 지나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20여년을 살아왔다" 고. 그리고 그는 탄식했다.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이 멀다(日暮途遠)" . 갈 길은 먼데 우리는 언제까지 가신들의 분쟁이나 보고 있어야 하나. 지도자의 결단이 아쉽다.

권영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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