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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웰빙] 역사 속 지도자들, 이래서 장수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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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한 유명인이 오래 살기까지 한다면 대단한 행운이다.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는 것은 사회역학적으로 이미 증명돼 있다. 그러나 역사책 속의 인물이 장수한 경우는 흔치 않다.

장수를 염원해 불로초까지 찾아 헤맸던 진시황도 겨우 49년밖에 살지 못했다. 알렉산더 대왕도 33세 때 숨졌다. 권력을 유지하거나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하루하루 과도한 스트레스와 긴장 속에서 살았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장수를 누린 유명인도 많다. 탕평책을 편 조선의 영조,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른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 실권.복권을 수차례 반복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산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 등이 대표적이다.'만병의 근원'이라는 스트레스도 이들의 수명을 줄이지 못했다.

이들의 아주 특별한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 처칠

영국의 정치가 처칠(1874~1965)은 단명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뚱뚱한 데다 배가 많이 나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첫 면담 때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또 늘 시가를 입에 물고 다녔고, 위스키를 물처럼 마셨다. 여성 편력도 상당했다. 이런 처칠이 보란 듯이 91세까지 살자 영국의 한 유전학자는 처칠만이 갖고 있는 어떤 '보호 유전자'(처칠 유전자)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게 다일까.

AG클리닉 권용욱 원장은 "독일군의 공습으로 런던이 폐허로 변해가는 도중에도 처칠은 웃음을 잃지 않았고 늘 승리의 V자를 그렸다"며 "이런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 그의 장수를 도왔다"고 분석한다. 그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늘 낮잠을 잤다. "내 활력의 근원은 낮잠이며, 낮잠을 자지 않는 사람은 뭔가 부자연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란 말을 남겼다.

문학에 소질이 있었던 처칠은 회고록으로 1945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미술에도 강한 애착을 보였다. 권 원장은 "나이 들어 자서전을 쓰는 등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훌륭한 뇌의 노화 방지법"이라고 지적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골초였던 처칠이 애연가에게 장수의 희망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유병팔 전 미국 텍사스주립대 노화연구소장은 "처칠이 담배만 피우지 않았다면 100세는 거뜬히 넘겼을 것"이라고 일축한다.

*** 덩샤오핑

죽어서도 중국을 지배한다는 덩샤오핑(1904~97). 건강을 돌볼 여유가 없는 혁명가로 젊은 시절을 보냈고, 중년 이후엔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는 권력 투쟁의 중심에 있었다. 그럼에도 93세까지 살았다.

덩의 건강법 중 잘 알려진 것은 수영이다. 어려서부터 수영을 즐겼고 말년에도 양쯔강을 건널 정도였다.

유병팔 박사는 "수영은 걷기.조깅과 함께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으로 지구력.심폐 기능.근력.유연성을 길러준다"며 "물에서 하는 운동이어서 관절.근육에 과중한 부담을 주지 않으므로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시골 출신인 덩은 평생 채식 위주의 식사를 했으며 끼니 때마다 반주를 곁들였다. 덩은 또 세계 챔피언급 브리지(카드놀이의 일종) 게이머였다. 도박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는 등 건강에 해롭지만 간단한 카드놀이.낱말 맞추기 퍼즐.바둑 등은 치매 예방은 물론 기억력.집중력을 유지시키는 '두뇌 조깅'이라는 것이 노화학자들의 견해다.

*** 영조

조선의 왕 가운데 최장수자는 영조(1694~1776)다. 조선 왕의 평균 수명(47세)보다 거의 두 배(82세)나 살았다.

조선의 왕들이 단명한 원인으론 과다한 열량 섭취, 스트레스, 운동 부족, 지나친 성생활 등이 꼽힌다.

반면 요순시대의 재현을 목표로 탕평책을 폈던 영조는 스스로 절제와 검약을 실천했다. 하루 다섯 번 수라상을 받던 다른 왕들과 달리 하루 세 번만 식사했다. 끼니를 거르지 않고, 식사 시간을 잘 지켰다.

또 주색을 멀리했다. 밥도 흰쌀밥보다 잡곡밥을 즐겼다.

권용욱 원장은 "궁궐의 하녀 격인 무수리 출신인 어머니 숙빈 최씨에게 물려받은 건강한 유전자도 그의 장수에 기여했을 것"이라며 "절제가 그의 건강 비결"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영조도 말년엔 기력과 분별력이 떨어져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굶겨 죽이는 등 정치적 실수가 잦아졌다. 일부 사가들은 그가 노인성 치매를 앓아 판단력이 흐려졌던 탓으로 추정한다.

*** 김일성

'김일성 장수연구소'라는 기관까지 만들어 자신의 건강을 관리한 김일성(1912~94). 그러나 82세에 숨져 특별히 장수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의 건강법도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볼 때 신통할 게 없다는 것이 다수 노화학자들의 평가다.

탈북자 출신 한의사 석영환씨는 "김은 오목수(五沐水) 요법.산삼 향기요법.신침 요법.명상 등 자연요법에 많이 의존했다"고 전한다. 오목수 요법은 향부자.유근피 등 다섯 가지 한약재를 우려낸 물로 목욕하는 일종의 스파 요법. 중풍.아토피성 피부염.어혈을 푸는 데 효능이 있다고 한다. 산삼 향기요법은 아로마테라피의 하나다. 산삼 농축액을 꽃에 주입해 산삼향을 발산시킨다.

김은 32가지 한약재가 든 특수 베개를 베고 잤다. 이는 '의방유취'(조선 세종 때 편찬된 의학 백과사전)에 나오는 신침(神枕.신선이 베는 베개)요법으로 코골이.축농증.두통.불면증.중풍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은 두 손바닥을 마찰해 열을 낸 뒤 얼굴과 온몸을 마사지하는 건욕 요법도 자주 했다. 이는 추운 지방에선 흔히 하는 양생법이다.

또 현장에서 직접 녹음해온 솔바람.파도 소리 등을 들으면서 사색에 잠기는, 음악 명상을 즐겼다. 특히 백두산의 숲을 흔드는 눈보라 소리를 좋아했다고 한다. 이는 그에게 심신을 안정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효과를 주었을 것이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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