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글로벌 스탠더드’ 세계 누비는 쇼트트랙 지도자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2면

“일본에서 기술을 배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대한빙상경기연맹 전명규 부회장은 1980년대 중반 일본에서 쇼트트랙 기술을 배웠다. 그때만 해도 일본이 쇼트트랙 선진국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초 일본 쇼트트랙 대표팀은 한국의 김선태 코치를 영입했다. 한국의 선진 기술을 배워 일본 쇼트트랙의 부흥을 이끌겠다는 의도였다. 30년 만에 처지가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김 코치는 부임한 뒤 일본 쇼트트랙을 한 단계 올려놨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3월 세계선수권 대회 남자 5000m 계주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세계선수권에서 9년만에 딴 메달이었다.

최근 눈부신 발전을 보이는 미국 대표팀에도 한국인 지도자가 있다. 전재수 감독과 장권옥 코치 콤비다. 한국인 콤비가 팀을 맡은 이후 미국 쇼트트랙팀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09~2010 시즌 첫 대회였던 ISU(국제빙상경기연맹) 쇼트트랙 월드컵 1차대회에서 미국은 여자 1000m에 출전한 뤼터 캐서린이 한국과 중국을 제치고 금메달을 따내는 이변을 연출했다. 1차대회에서 미국이 딴 총 메달수는 금1·은1·동2개로 참가국 중 3위. 국가대표 선발전 후 일주일 만에 나선 대회에서 거둔 값진 성과다. 한국 대표팀 성시백(용인시청)이 “예전의 미국이 안톤 오노 1인팀이라고 한다면, 지금 미국에서는 얕볼 만한 선수가 한 명도 없다. 예전에 비해 엄청난 성장세”라고 감탄할 정도다. 이 밖에도 뉴질랜드팀은 박해근 코치가, 프랑스팀은 조항민 코치가 이끈다.

한국인 지도자들이 해외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전재수 미국 대표팀 감독은 한국 지도자의 장점으로 훈련량, 정신력, 선수와의 신뢰 등 세 가지를 꼽는다. 그는 “한계에 부딪혔을 때 쉽게 포기하는 외국인 선수들에게 정신력을 강조해 한 단계 도약하게 만들고, 선수와 지도자 간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한국식 정서가 효과를 보는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본팀의 김선태 코치는 “한국 코치들은 외국 지도자에 비해 기본기를 잘 가르친다. 세밀한 부분까지 관찰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인 코치들이 외국 대표팀을 맡으면서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전 부회장은 이에 대해 “다른 나라가 함께 성장해야 한국 쇼트트랙도 자극을 받아 더 발전한다. 고른 성장세를 보여야 ‘한국이 휩쓰는 쇼트트랙의 메달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사그라진다”고 말했다.

온누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