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기술을 배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대한빙상경기연맹 전명규 부회장은 1980년대 중반 일본에서 쇼트트랙 기술을 배웠다. 그때만 해도 일본이 쇼트트랙 선진국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초 일본 쇼트트랙 대표팀은 한국의 김선태 코치를 영입했다. 한국의 선진 기술을 배워 일본 쇼트트랙의 부흥을 이끌겠다는 의도였다. 30년 만에 처지가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김 코치는 부임한 뒤 일본 쇼트트랙을 한 단계 올려놨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3월 세계선수권 대회 남자 5000m 계주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세계선수권에서 9년만에 딴 메달이었다.
최근 눈부신 발전을 보이는 미국 대표팀에도 한국인 지도자가 있다. 전재수 감독과 장권옥 코치 콤비다. 한국인 콤비가 팀을 맡은 이후 미국 쇼트트랙팀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09~2010 시즌 첫 대회였던 ISU(국제빙상경기연맹) 쇼트트랙 월드컵 1차대회에서 미국은 여자 1000m에 출전한 뤼터 캐서린이 한국과 중국을 제치고 금메달을 따내는 이변을 연출했다. 1차대회에서 미국이 딴 총 메달수는 금1·은1·동2개로 참가국 중 3위. 국가대표 선발전 후 일주일 만에 나선 대회에서 거둔 값진 성과다. 한국 대표팀 성시백(용인시청)이 “예전의 미국이 안톤 오노 1인팀이라고 한다면, 지금 미국에서는 얕볼 만한 선수가 한 명도 없다. 예전에 비해 엄청난 성장세”라고 감탄할 정도다. 이 밖에도 뉴질랜드팀은 박해근 코치가, 프랑스팀은 조항민 코치가 이끈다.
한국인 지도자들이 해외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전재수 미국 대표팀 감독은 한국 지도자의 장점으로 훈련량, 정신력, 선수와의 신뢰 등 세 가지를 꼽는다. 그는 “한계에 부딪혔을 때 쉽게 포기하는 외국인 선수들에게 정신력을 강조해 한 단계 도약하게 만들고, 선수와 지도자 간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한국식 정서가 효과를 보는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본팀의 김선태 코치는 “한국 코치들은 외국 지도자에 비해 기본기를 잘 가르친다. 세밀한 부분까지 관찰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인 코치들이 외국 대표팀을 맡으면서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전 부회장은 이에 대해 “다른 나라가 함께 성장해야 한국 쇼트트랙도 자극을 받아 더 발전한다. 고른 성장세를 보여야 ‘한국이 휩쓰는 쇼트트랙의 메달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사그라진다”고 말했다.
온누리 기자